중국이야기 50 악비(岳飛)의 사당인 악왕묘(岳王廟)
중국이야기 50 악비(岳飛)의 사당인 악왕묘(岳王廟)
  •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회장
  • 승인 2012.10.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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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회장

은허 유적지인 하남성 안양시 부근에 탕음현(湯陰縣)이 있다. 탕음현은 원래 남송 장수 악비의 고향으로 유명해서 사당인 악비묘가 있다. 1129년 여진족의 금나라가 남하했을 때 강경주전론을 펼쳤던 인물이 악비이다. 악비의 대척점에는 온건주화론을 펼쳤던 진회(秦檜)가 있었다.
송사(宋史) 악비 열전에 평가하기를 ‘악비와 진회의 세력은 양립할 수 없었다’면서 ‘제갈공명의 풍모가 있던 악비는 진회에 의해 죽고 말았다‘ 라고 적고 있다. 당시에도 두 노선 중 어느 것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악비 사후 300여 년 후에도 악비를 한족의 민족영웅으로 떠오르게 했다.

악비는 제갈량과 더불어 충절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중국인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관우와 함께 군신(軍神)으로 숭배되기까지 한다. 실제로 그는 금나라 군대를 맞아 연전연승을 거뒀고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 인기가 드높았다.
하지만 강남으로 달아나 항주를 임시 도읍으로 삼고 있던 송의 귀족들은 악비가 눈엣가시 같았다.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서호의 풍광이나 즐기며 취생몽사(醉生夢死)하는 게 그들의 바람이었던 까닭이다. 진회는 가짜 성지를 만들어 악비의 병권을 빼앗고 소환해 죽였다.

결국 송은 굴욕적 화친조약을 맺고 금의 속국이 됐다. 나중에 무장 한세충이 진회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물었다. “도대체 악비에게 무슨 죄가 있었던 것이오?” 이때 진회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럴 만한 일이 아마도 있었을 것이오(其事體莫須有).”
악비는 나중에 복권돼 악왕(顎王)으로 추존됐다. 하지만 진회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간신으로 등극한다. 항주에 사당과 묘가 있다. 1221년에 건립된 이 사당 안에 높이 4.5m의 악비 좌상이 있고, 대전 밖의 정원에는 악비 부자의 묘가 있다. 장군의 무덤 앞에는 손이 뒤로하고 포승줄로 묶여서 무릎을 꿇고 있는 4개 철상이 있는데, 이것은 악비를 투옥하고 독살한 투항파의 간신 진회 부부와 그들의 심복이다.

관람객들이 진회 부부의 철상에 침을 뱉거나 때리는 사람들이 있어, '침을 뱉지 말 것'이라는 푯말이 붙여 놓았다. 이 철상은 국보에 해당하는 전국 중점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하였다. 청나라 건륭황제 때 과거에 장원급제한 진간천은 “송나라 이후 사람들은 ‘회(檜)’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나는 ’진(秦)‘이라는 성에 참담해하는구나”라는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는 진회의 후손이었다.
간신에 대한 역사의 심판은 엄정하다. 그럼에도 간신은 끊임없이 등장해 군주를 포악하게 만들고, 충신을 모함하며, 조정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해 나라를 팔아먹기도 한다.

2003년에 들어서 중국의 사학계가 역사적 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놓고 돌연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그 동안 민족적 영웅으로 평가 받아온 악비가 전혀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역사 교육 당국의 전격 발표가 최근 나오자 대학에 재직 중인 현장의 학자들이 이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더구나 중국 사학계의 태두인 대일(戴逸)박사와 중국 송사(宋史)연구회의 왕증유(王曾瑜) 회장 등은 어떻게 교육 당국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고 하면서 분노의 입장까지 표명함에 따라 중국 사학계는 갑작스레 심각한 분열양상 마저 보이고 있다 .

중국인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악비는 송대에 여진족이 세운 금과 투쟁하다 장렬하게 희생된 인물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역사 교육 당국이 외세가 아닌 민족 내부 간의 모순에 저항해 싸운 영웅들은 민족 영웅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악비가 갑자기 평범한 인물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중화민족의 개념에 한족 외에 몽골․만주 등도 모두 포함된다고 재규정하다 보니 만주족과 싸운 악비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데 논리적 모순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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