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들어간 H형에게
시골로 들어간 H형에게
  • 신일섭 교수(호남대 복지행정대학원장)
  • 승인 2012.09.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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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섭 교수(호남대 복지행정대학원장)
H형, 요즘 밤낮으로 가을 초입의 스산함이 느껴집니다. 산자락에 자리한 형 마을에서는 더욱 깊어지는 가을 맛을 느끼겠죠. 그 곳은 광주 근교에 있으면서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골의 맛을 느끼게 했습니다. 마을 가운데 수백 년을 지켜온 듯한 아름드리 당산나무들은 그 동네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 당산나무들은 이제 지나온 세월을 이기지 못해 고목 등걸을 내보이며 힘겹게 자신의 몸을 추스르고 있는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습니다.H형, 근래 귀촌(歸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어수선한 세상 탓도 크지만 조용하고 소박한 생활을 위하여 삶의 양식을 바꾸고자 시골마을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형은 8년 전 귀촌을 결심하고 그 동안 쉬엄쉬엄 준비해서 정년퇴직과 동시에 올 봄 집을 짓고 시골에 들어왔다고 하니 그 끈기와 집념 또한 대단합니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 평생직장이었던 학교 선생님으로서 타락해가는 제도교육을 바꾸어 보고자 전국교원노동조합(전교조) 일에 발 벗고 나섰다가 10여년 가까이 해직과 함께 거리의 교사로서 때로는 구속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요.

이제는 좀 더 자신의 삶과 가족, 고생했던 아내를 위해 살아보고 싶다는 형의 바람은 인간적인 고백을 넘어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형은 그 날 찾아간 우리들에게 귀촌 과정을 사진과 함께 담아 풀어 쓴 <아내의 뜨락>이라는 아담한 책을 선물했지요. 그 산골에서 손수 작업(노동)하고 주위 자연환경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들을 꼼꼼하게 담아내는 형의 글 솜씨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시골에 묻혀 살고자 하면서도 군데군데 묻어나는 세상과 사회를 향한 분노와 걱정, 이웃에 대한 배려와 연민,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채찍과 경계는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한 지식인으로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자신에 대한 자신의 견제이겠지요.H형, 형의 책 속에서 <타샤의 정원>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나는 형의 글을 읽으면서 인도 간디(Gandhi)의 사상적 스승이었던 미국 쏘로우(H.D. Thoreau)의 저서 <월든>(Walden)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청년으로서, 세상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2년여 월든 호숫가로 들어가 손수 오두막을 짓고 순수 자연세계에 대한 관찰과 함께 진리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과 동떨어진 월든의 자연 숲속에 살면서도 1846년 당시 미국의 멕시코 침략에 저항하고자 자신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었던 조세(인두세) 거부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힘없는 주위 나라를 침략하여 영토 확장을 노리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해 비록 조국인 미국이었지만 그러한 불량 국가에 세금을 납부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진실을 향한 용기는 훗날 그의 또 다른 저서 <시민 불복종>을 통해 인류 역사의 위대한 인권운동과 시민운동의 사상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H형, 형의 삶과 책 속에는 시대를 달리하지만 쏘로우와 같은 진실한 용기와 정신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그를 뛰어 넘어서는 형의 새로운 삶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그 날 형의 정원에서 나누었던 텁텁한 막걸리가 생각납니다. 형수님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는 형의 부부애는 부러움을 넘어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아내의 뜨락’에는 붉게 익어가는 가을 고추와 함께 따스한 가을볕이 마당 가득하겠지요.
다시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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