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여성운동사 14>여성운동을 이끌어 나간 수피아 동문(3)
<광주전남여성운동사 14>여성운동을 이끌어 나간 수피아 동문(3)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2.09.26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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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아 정신 받아 여성 운동 펼친 ‘양명순’

1910년 한일 합방이 이루어진 지 10년 후인 1919년. 우리는 격동의 시기를 지내게 된다. 광주 양림동에 위치한 수피아 여학교의 100여 년 전 역사만 살펴봐도 알 수가 있다.

1904년 개교한 수피아 여학교는 일제하에서 기미년 1919년과 1937년 신사참배 거부 등의 이유로 두 차례나 폐교 될 만큼 당시 학생들의 단결심과 애국 애족 정신은 활활 불타오르듯 했다.

그 중 머리를 치마 끝까지 길게 땋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수피아 여학교를 빛냈던 인물 중에 한 명인 양명순을 눈여겨 볼 수 있다.

신교육 받은 선진 여성

▲양명순 여사
1907년에 태어난 양명순은 1915년 수피아 보통과 1학년에 입학하게 됐다. 그때 당시만 해도 여자가 학교에 가면 버린다고 학교에 보내기를 꺼려했지만 양 여사의 부모는 일찍이 기독교 예수를 믿은 터라 개화사상에 트여있어 학교에 보내게 됐다고 한다.

수피아 90년사 축사(648쪽)에서 양명순 여사는 “그 시절에는 남자 선생님이 귀했고 중학교에서 몇 분 안되는 남선생이 계셨는데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재미 있었다”고 회고할 만큼 티 없이 순수했던 여학생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다 그녀가 보통과 3학년을 다니던 해. 3·1운동이 발생했다. 양명순 역시 수피아 여학교가 주도했었던 3.10만세운동에 참가했다. 당시 그녀는 “나이가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지만, 언니들이 허리에 띠를 고, 이마에 수건을 매고,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뛰어가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아픔을 남겼던 3.1 항일 운동 현장에도 함께 동참했단 걸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그녀는 “교통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각 지방으로 뛰어다니며 연락을 했고 ‘독립선언문’도 어느 누구도 누설시키는 일이 없이 시민들에게 배포하게 했다”고 한다. 또한 “3.10항일운동으로 어느 누구 하나 매를 맞고, 짓밟히고, 죽음을 당하는 것에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비겁한 짓을 하지 않았다”며 불타오르는 애족 정신을 보였다.

한편 일본 정부에서 한민족은 일본의 보호에 만족하고 있다며 선전하고 있었기에 외국에서도 한민족은 다 굴복하고 죽은 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민족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되는 3.1 만세운동으로 인해 세계 사람들에게 한민족이 재조명 되어 깜짝 놀라게 하는 역할에 한몫 했던 것이다. 1919년 광주 수피아 여학교의 3.10운동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여성을 위한 왕성한 사회 활동

▲1954년 총회에 참석한 여성운동가 Y연합회원들. 우로부터 현덕신,조아라,박현숙,양명순
양 여사는 학교 생활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배인애’라는 학생과 함께 병창을 해서 늘 칭찬을 받아 왔다. 똑똑하고 야무졌던 그녀는 보통학교 졸업식 때 졸업생들을 대표하여 답사를 읽게 되기도 했다.
역사의식이 남달랐던 수피아 여학교는 졸업식이면 전날 밤에 축하회라 하여 ‘반일회(班日會)라는 모임이 있었다. 그녀 역시 이곳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이는 반일회(反日會)라고 일본에 반대하는 모임이라는 숨어 있는 뜻이 담겨져 있어, 수피아의 항일 민족운동의 전통이 이어져 훌륭한 한 단락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녀는 이러한 수피아 여학교에서 여러 추억을 품고서 학창시절 10여년을 지내왔다. 이후 양명순은 1925년 3월 수피아 여학교 고등과 제 7회 졸업을 끝으로 인격, 인생관, 종교관, 애국 애족하는 마음도 모두 이곳에서 다듬어지고 길러지게 됐다.

또한 여성운동가를 많이 배출해 낸 학교 명성에 걸맞게 사회활동도 두드러지게 활동하게 됐다. 1960년부터 1966년까지 광주 YWCA회장을 역임하면서 여성운동을 위해 부단한 노력에 힘써왔다. 특히 윤락여성, 부랑아, 미망인을 직접 만나 자립하고 다시 갱생할 수 있도록 자수, 편물, 조화, 인형 만들기 등을 지도하기에 앞장섰다.

광주의 대모이자 수피아에 낳은 빛나는 대표적 인물 조아라(여성운동가) 여사와 함께 Y를 통해 사회봉사를 해오다 양 여사는 지난 1968년 대한일보 주최 제 1회 대한어머니상을 수상하는 큰 영예를 얻고 작고하게 됐다./김다이 기자

▲양명순 여사는 지난 1968년 왕성한 여성활동으로 제 1회 대한어머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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