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의 대한민국의 광복
‘호사다마’의 대한민국의 광복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2.08.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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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 광복 67년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해방으로 불러야할지 광복으로 일컬어야 할지는 논외로 하고, 우리나라는 일천한 건국에 비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현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으면서 아직도 군사적 대치상태를 계속하고 있다.

자부심과 자괴감이 착종하는 한국 현대사를 마주하다 보면 동족상잔의 한국전쟁과 쇠심줄보다도 더 질긴 좌우의 대립, 건국의 간난신고와 생잔마저 감지덕지한 민초들의 삶은 4·19, 5·18투쟁의 혁혁한 민주화 성과에도 불구하고 독재 권력들이 안배한 현실과 그 결과들을 용인하여 왔다.

사회정의와 민주화 가치는 현실조건을 투과하면서 그 지향을 무디게 하고 있다. 안타까운 모순들이 난마같이 얽힌 현실을 극복하기보다 그것들을 운용하는데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는 세력들은 가치 비하를 서슴지 않는다. 누가 옳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영향력을 갖느냐를 더 중요시한다.

삶에 큰 기준들이 없어도 생존은 계속되고 신진대사는 이루어진다는 현실들이 모든 것을 압도해온 것이 광복 67년의 성과라면, 그것은 필시 호사다마이다. 해방과 광복의 아름다운 길에 마가 끼지 않고서야 남북분단을 넘어 어찌 동서분단까지를 걱정하게 만드는가? 더욱이 양극화와 물가고는 미래 없는 서민들을 양산하고 있다.

마의 실체는 무엇일까가 궁금해진다. 남북분단의 책임은 미국과 소련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한테는 책임이 없는가? 미․소 분단의 현실 속에 애국적 연합과 민주합작의 기회가 없었던 것인가? 그 기회가 있고 그러한 노력이 있었다면 그것을 방해한 세력들은 누구였던가! 일찍이 중국의 왕농혜는 ‘독립지연의 책임은 전 조선국민이다’고 지적하였다.

3·8선의 장벽이라는 중대한 객관정세가 있다고 치더라도 사상적 분열 대립으로 영도권의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분할의 현실에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민족상잔을 격지 않고 결국 통일을 이루었다. 마귀는 좋은 일이 되어가는 것을 훼방 치는데, 그것은 바로 욕심이다.

욕심은 가치와 기준을 이기심으로 용해하거나 무화시킨다. 무장 독립투쟁을 주장한 박용만을 이승만은 김구선생에게 변절자로 귀뜸하고 있었는데, 박용만과 이승만은 미국에서 독립투쟁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고 있었다. 뭉쳐야 산다고 온 국민을 독려했던 국부(?) 이승만이 독립운동의 주요 지도자를 모함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등산 중에 실족사 했다던 장준하 선생의 사인이 실족사가 아닌 6cm에 달하는 두개골 함몰에 의한 사망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고, 그 함몰은 가격에 의한 것으로 의사들의 소견이 모아 지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장준하선생의 사망은 이미 조사가 끝난 일이라고, 새로운 사인이 들어남에도 불구하고 거론에 반대하고 있다.

살인은 물론 성범죄자까지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마당에 독재권력의 모살 행위를 이미 조사가 끝났다는 것을 빌미로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역사의 무덤 속에 암장하려 한다. 권력자의 딸들이 걷는 두 길이 있는 성싶다. 스탈린, 모택동, 프랑코의 딸들은 아버지의 전횡을, 인민들에 대한 전횡을 미안해하면서 살았다.
간디, 스카르노, 부토의 딸들은 아버지를 따라 권력에의 길을 걸었으나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북한의 삼대세습은 아들이니까 용훼할 필요가 없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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