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지와 태봉산 3
경양지와 태봉산 3
  • 전남과학대학교 교수 정건재(동양사회사전공)
  • 승인 2012.07.26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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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지도 없어지고 태봉산도 사라졌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그나마 경양지 매립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들어섰던 구 광주시 청사 건물(동구 계림동)이 불과 35년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광주시 신청사는 1998년부터 무려 1,600억원을 들여 2004년 3월 상무 신도심 지구에 으리으리하게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십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근시안적 정책 착오로 인한 막대한 재정 손실은 고사하고, 무한 가치의 역사문화 유산을 상실한 것이다. 이에 대해 누구하나 책임을 지려고도, 어느 누구도 책임을 묻지도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세종대왕의 백성 사랑의 큰 뜻과 다산 정약용이 찬미했던 역사 문화유적지, 파묻고 헐어 버린 광주 경양지와 태봉산이 초라한 규모의 컨테이너 구조물 ‘경양마을 사료전시관’ 등에 그 흔적만 남겨놓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 왜곡의 현장

광주에서 동쪽으로 불과 20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 경상북도 경주시에 새롭게 등장한 경주보문관광단지(전체 321만평)와 단지내 보문호(인공호수 50만평)와 신라 민속촌 5만평 등과는 비교하기조차 싫다. 정말 외면하고 싶은 이 현실이 대한민국 서남부 호남의 중심지 광주광역시의 오늘의 현주소이다.

광주시 동구 계림동 ‘경양마을 사료전시관’ 100여 평과 신라공화국 수도 경주 경주보문관광단지 321만평은 너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 역사 왜곡의 현장으로서 오늘 날 광주를 상징적으로 웅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양지와 태봉산은 비록 우리들 앞에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역사적 의식 속에서는 면면히 살아남아 있다.

지난 2006년 11월 2일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광주일보’에 쓴 태봉산 경양방죽의 추억이라는 향수를 달래는 글이 있다. 그 가운데 “태봉산에서 동쪽으로 5리가 채 못 되는 거리에 있던 경양방죽은 아마 만여 평은 됨직한 제법 넓은 호수였다. 주변의 하수가 모여 고이는 곳이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정수 시설이 있었을 리 만무하여 물 빛깔은 항상 뿌옇게 흐려 있었다.

게다가 큰비라도 내린 뒤에는 여기저기에 오물이 둥둥 떠다니기도 했으나 여름철이면 우리들이 맘껏 멱 감고 첨벙거릴 수 있는 곳이었고 나들이 가족들이 ‘보트’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또 추운 날이 계속되는 겨울철이면 빙판이 되어 썰매를 지치곤 했었는데 늦겨울에는 얼음이 꺼져내려 종종 익사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이곳은 우리 집과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의 길처에 있어서 둘레의 뚝방 길에 심어져 있던 팽나무나 버드나무와 함께 방죽이 계절에 따라 달라져 가는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아련히 남아있다.”

곳곳에서 복원 의지 엿보여 다행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광주 지역사회 일각에서 경양지와 태봉산에 대한 복원의 기운이 일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우선, 2003년 광주시 당국은 환경모범도시 조성 환경도시 40대 시책 가운데 가장 우선적 사업으로 옛 경양호 복원을 제시한 바 있었다.

또 ‘2012년 총·대선 공약 발굴결과 보고회’ 환경 분야(5건 20개 프로젝트 9조 7천억원 규모) 사업 가운데, 광주천과 풍암호수를 연결하는 물 순환 시범도시를 조성한다는 복안으로 ‘양동복개하천 복원 및 주변지구 개발’(1조원)사업. 서방천, 용봉천 등 도심복개하천 생태복원 등 주변 재개발(6,000억원) 사업과 함께, 옛 경양 방죽지 중심 호수공원 조성(3,000억원) 사업 등을 포함시켰다.

한편, 2006년, 광주지역 시민단체(광주경실련, 광주전남녹색연합, 광주환경운동연합, 광주YMCA, 민족예술인총연합, 누리문화재단, 시민문화회의)들도 “구 시청 부지는 훗날 경양호로 복원되어야 한다”는 성명서(2006,9,18)를 내고, “계림동 舊시청 부지는 거시적 안목에서 경양호 복원을 비롯한 공공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옛 경양호의 복원은 근대 도시로서 광주의 모습, 역사와 문화, 나아가 정신을 복원하는 일이다. 지난 과거 도시화 과정에서 무시되고 간과했던 도시의 역사 및 문화유산의 보존, 복원은 국내외 도시들의 추세이다. 과거의 도시개발이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했다면, 청계천 복원에서와 같이 현재의 도시발전은 과거의 흔적을 되찾고 복원하는 일과 함께하고 있다.”고 경양지 복원사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광주 동구와 지역주민들도 비록 초라하지만 ‘추억의 경양마을’을 조성, 광주의 옛 역사·문화를 살려내려는 소박한 노력의 결과, 경양방죽 옛 터 주변의 빈집과 컨테이너 등을 활용해 경양방죽을 축소 재현한 ‘경양마을 사료전시관’이 등장했다.



∆옛 경양방죽 터 주변의 빈집과 컨테이너 등을 활용해 경양방죽을 축소 재현한 ‘경양마을 사료전시관’.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말자

어쨌든 동구는 지금은 없어진 저수지 ‘경양방죽’이 자리했던 곳을 ‘추억의 경양마을’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지금은 도시개발과정으로 자취를 잃어버린 경양방죽은 옛날부터 일제 강점 시까지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저수지로 시민들의 물놀이 장소였다. 그리고 옛 경양방죽 터 주변의 빈집과 컨테이너 등을 활용해 경양방죽을 축소 재현한 경양마을 사료전시관을 개관했다.

불과 반세기 앞도 내다보지 못한 후손들 때문에 조선 세종 이후 반 천 년(527년간) 광주의 생명수, 광주의 젖줄 역사 유산, 경양지와 태봉산을 헐어서, 영원히 땅속에 파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을 뿐 아니라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이와 같이 경양지와 태봉산이 지난 시절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와 한국의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에 의한 정치적 희생양으로 사라졌다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바로 지금 광주 지역사회와 대한민국은 국내외의 역사적 실례로부터 교훈을 얻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후세에 다시는 이런 후안무치한 어리석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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