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암'이 존재한다
말에도 '암'이 존재한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6.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라도 말 사잇길-말의 미로(3)

일상에서 쓰는 말이 모두 마땅한 말인 것은 아니다. 말도 생명체인지라 병들기도 하고 늙기도 한다. 인간의 생로병사가 자연의 한 과정이듯, 말 또한 그런 과정을 겪는다.

문제는 병든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다. 말도 때로는 병원에 가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언어학자와 작가는 말에 대한 의사 역할을 한다.
현대 의학이 극복하지 못하는 불치의 병 중 하나로 암이 있다. '암'도 몸을 이루는 세포이지만, 암세포는 다른 세포를 하나씩 먹어치우며 결국에는 몸을 죽게 만든다.

말에도 '암'이 있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국적불명의 ㅊㅋㅊㅋ나 -입니당 -습니다염 같은 표현 방법도 '암'의 한 종류다.


인터넷에 떠도는 국적불명의 표현들이 바로 말의 '암' 아닌가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숫하게 남아있던 일본식 어투들도 그렇다. 그렇게 치유되고 다시 생겨나는 말이 있다. 언어는 역사와 환경의 산물인지라, 밴또, 쓰봉 같은 말은 도시락과 바지에 밀려났고, 써클이라는 말도 동아리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암'이 정상으로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포크레인을 코크링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주목하자. 우리 민중은 이미 포크레인이 아닌, 코크링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창출한 것이다. 원칙보다 앞서는 것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 나라의 사전은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단어에 대해 그다지도 인색한가?

산에 가까워지자, 비탈을 일군 밭들이 눈에 띈다. 완두콩 꽃이 피었다. 나비 같은 꽃. 꽃향기가 팔랑팔랑 날아든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인사를 한다. 비눈 듣다 싶더니만, 다시 햇살이다. 햇볕과 햇살을 구분할 줄 알았던 우리 민족은 예민한 사람들이다. 빛을 입자와 줄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니!

산에서 내려오던 할머니 한 분이, 아이를 만지작거리며, 오매 '귄 있능거' 하신다. '귄 있다'는 말은 '귀엽다'는 말에서 왔을 테지만, '귀엽다'와 '귄 있다'가 동일한 뜻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말은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서의 반영이다. '귀엽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귀염성이 있어 사랑할 만하다'고 나온다. 여기에서 '귀염'은 '사랑해 귀엽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해석되어 있다. '귀엽다'는 말이나, '귄 있다'는 말이나, 사랑해 귀엽게 여기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말은 사용자의 정서를 반영한다

하지만 '귀엽다'는 말은 거기에 하나를 더해 '깜찍하다'는 뜻이 가미된다. 하지만 '귄 있다'는 말은 '깜찍하다'는 의미보다는 '복스럽다'는 뜻이 강화되어 있다. 풍토가 다르면 말의 의미가 달라진다.

종종거리던 아이가 다리가 아프다며 주저앉는다. '아빠. 다리 아퍼.'
나는 아이에게 모음조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인간이 정한 규칙을 안다는 것은 사회화가 된다는 것이다. 당분간 나는 아이를 자연 속의 한 존재로 두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언젠가는 녀석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 할 것이다.

인간은 기록함으로 해서 살아있다. 무언가를 기록한 후 이름을 남긴다는 것과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름을 남김으로 해서 '자연' 속의 한 대상으로 있기를 거부한 것은 아닐까?

아이를 안고 있자니 땀이 난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저무는 숲은 모든 게 정리된 느낌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