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여성운동사1>다시태어나라! 광주의 딸
<광주전남여성운동사1>다시태어나라! 광주의 딸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2.06.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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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현시대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위치에서 사회, 경제, 정치계까지 뻗어나가는 것을 당연시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기까지에는 수많은 피, 땀을 흘린 ‘여성 운동가’들이 존재했다. <시민의 소리>에서는 그 동안 교과서 역사 속에 가려지고 소외됐던 우리 광주·전남 지역의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여성 운동가들을 재조명해본다.<편집자 주>

예로부터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처럼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억압하고 사회, 정치적으로 여성의 권위를 동등하게 인정해주지 않았다. 21세기를 맞이한 현재로써도 아직까지 여성들은 노동·임금문제, 육아·출산 문제의 합당한 대우와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선시대 여성상은 지고지순, 순종적인 여성, 뒷바라지 잘하는 현모양처 그 자체가 여성의 역할이었다. 보통은 여성들은 ‘꽃’처럼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로 여겼지만 여성운동가들이 있기에 결코 아니었다.

여성운동의 기틀을 다지게 된 시기는 개화기 여성교육의 시작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지난날의 여성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들에게 가려져 남모르게 연신 희생과 헌신을 해왔다. 

▲광주 장동 광주여고보(현 전남여고)에는 학생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학생독립운동여학도기념비'가 1959. 1. 13일에 건립됐다.

가려져 있던 ‘여성 운동사’

여성신교육은 1903년 목포항이 개항 이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남 최초 여성학교 목포정명학교, 1908년 광주 최초 여학교인 수피아여학교가 설립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교육의 터전이 마련 되면서 광주 YWCA, 광주부인회가 계몽적인 여성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이로 인해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당시 1919년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통해서 여성근대화 의식을 고취시켰다.

‘광주의 어머니’라 불리며 민족과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친 그 당시 수피아여학교에 다니던 조아라 여사는 일제강점기 말 신사참배에 반대에 앞장서며, YWCA의 왕성한 활동과 1980년 5.18 당시 고난의 한복판에서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또한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불씨를 타오르게 했던 나주역 댕기머리 소녀 이광춘, 박기옥의 사건과 광주여고보 출신 박옥련, 장매성, 최순덕, 암성금자(岩城錦子)가 백지동맹과 함께 소녀회를 꾸려 항일운동으로 여성의 존재감을 빛나게 했다.

항일운동으로 해방 이후에는 억압되었던 사회활동이 폭발함과 동시에 산업화와 여성단체들이 생겨남에 따라 전국적으로 활력이 되어 여성운동을 가속화 시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 분단이라는 아픔과 군사정권으로 인해 1950~60년대는 침체기가 다가왔다. 이 시기에는 한국부인회 전남지부(초대회장 류남옥), 광주YWCA 주도로 ‘전라남도여성단체협의회’등이 구성되어 정부 주도로 여성정책체계를 마련하게 된다.

독재정권이었던 1970년은 여성운동의 양극화 현상을 보여줬다. 중산층과 민주노조 여성노동자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졌으며, 1980년대는 광주5.18민주화운동을 겪은 광주의 여성들이 다른 지역 여성들보다 여성운동에 성숙한 언니가 된다.

▲1927년 광주여고보 1회 입학생들의 유일한 단체사진으로 이 학생들은 2년 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구축하는 역사적 인물들로 거듭나게 된다.

젊은 세대 여성 사회의식 부여

이후 1990년대는 여성단체들이 여성운동의 연대를 위하여 ‘광주 YWCA', ‘광주여성의 전화’, ‘광주 민우회’, ‘광주여성노동자회’ 등이 모여 광주전남여성문제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성의 권위·지위향상, 여성노동문제, 육아·출산문제 등에 집중 앞장서게 됐다.

여전히 각 시기 그 사회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여성의 삶과 역사에 대해 일정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이다. 이렇게 수많은 피땀 흘렸던 여성운동가들이 오늘날의 여성의 지위향상에 기틀을 마련해 준 것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항상 사회·정치적으로 정부시책에 관하여 보조 역할만 하던 광주 지역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정책결정의 참여와 견제의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지만 사회의식, 역사의식이 부족한 젊은 세대에게는 아직도 남 이야기만 같다.

최근 광주시는 광주를 여성친화도시로 선정하고 광주여성발전센터에 이어 광주여성재단설립 등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광주발전의 원동력을 삼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다시태어나라! 광주의 딸>에서는 근현대사에서 여성운동을 이끌어가는 여성의 삶 이야기, 여성운동사 재정리 등 광주의 젊은 여성세대에게 사회의식을 깨우쳐줌과 동시에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을 기대해본다.

‘여자는 나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은 바뀌어야한다. 이제는 젊은 여성들도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실천으로 연결될 방법을 모색해보고, 역사 속에 훨씬 많이 등장하는 남성에 맞춰서 균형 있는 역사서술이 될 수 있도록 단단해지고 강해져야 한다./김다이 기자

▲광주 양림동 광주수피아여고에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 광주 5.18민주화운동에서 공을 세운 여성 운동사의 '대모' 조아라 여사를 기념하기 위해 뒤늦은 2008년 10월 비석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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