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스캔들]이 주었던 쏠쏠한 재미!
[명작 스캔들]이 주었던 쏠쏠한 재미!
  • 김영주
  • 승인 2012.05.31 2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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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 토요일 일요일 밤, KBS에서 방영한 BBC다큐[Frozen Planet]6부작의 황홀한 화면에 난 저절로 빨려들었다. 그 찬란하게 아름다운 지구를 과연 ‘신의 작품’이라며 감동했고, 그 찬란한 신의 작품을 정성스레 담아낸 방송제작진의 노고를 ‘신의 손길’이라고 찬양했다. 그 감동이 채 식기도 전에, 우리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 떠올라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토록 찬란하게 아름다운 지구를 짓밟고 깨부수고 있는 인간들. 둘 다, 인간이 하는 일인데 . . . .



몇 년 전 [살아있는 지구]12부작도 참 대단했다. 난 오랫동안 BBC의 수많은 다큐에 열광했다. 작년에 미술다큐[명작의 사생활]에서 베르메르 · 클림트 · 우첼로 · 다빈치 · 달리 · 프란체스카 · 반 에이크 · 브뤼겔 · 고갱 9명의 대표작품을 중심으로 그 그림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그러던 차에 KBS교양프로그램[명작 스캔들]을 만나게 되었다. [명작의 사생활]에서 반짝 아이디어를 얻어서 대중적으로 각색하고 변주해서 만든 교양프로그램인 것 같다. 주옥같은 명작을 만들어낸 천재들의 뛰어난 능력과 불굴의 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안목과 도움말로 그 작품들에 숨겨진 뒷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풀어서 호기심을 자아내고 재미를 보태주지만 개인적인 에피소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연출자의 관점 : 보수파 B+.

아무리 형형하게 빛나는 보석도 본래 태생지에선 흔해 빠진 돌덩어리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 인간이란 게 참 요상스럽다 보니, 바위틈새 돌덩어리를 벗겨내어 그 형형하게 빛나는 부분만 예쁘게 뽑아내서 보석이라며 희롱하고 해롱거린다. 인간의 文明 자체가 이런 요상한 짓이 아닐까? 인간 말고는 이런 짓을 하는 생명체는 없다. 인간의 이런 모습을, 좋게 보는 쪽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고, 나쁘게 보는 쪽은 ‘만물의 암세포’라고 한다. 난 요즘 부쩍 ‘만물의 암세포’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래선지 [명작 스캔들]에서 출연진들이 그 명작과 그 천재들에게 갖은 찬양을 바쳐 올려도, 그 찬양보다는 그 천재들의 뛰어난 능력 뒤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일상의 인간적인 체취에 더 맘이 쏠렸다.

명작이란 게, 미술이나 음악에만 있는 건 아니다. 철학 문학 건축뿐만 아니라, 인간의 손길이 닿은 악기 의상 요리 자동차 도자기 커피 가방 포도주 칼 붓 · · · , 이 수많은 물건들에 명품이 있고 그 명장이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미술과 음악에만 집중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걸 말할 수는 없으니까 일부러 음악과 미술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조영남은 고정출연하고 나머진 그 작품들의 전문가와 몇몇 예술인이 바꾸어가며 출연한다. 전문가들의 전문지식에 예술인들의 분방한 상상이 보태져서 딱딱하지 않고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가는데, 여기에 조영남이 어수룩한 듯이 약방에 감초처럼 툭툭 던지는 재담은 분위기를 더욱 생기롭게 북돋운다. 조영남에게 이런저런 불만이 없지 않지만, 엔터테이너로 그가 보여주는 구수하고 편안한 입담과 너스레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그들의 수다라고 할 어수선한 잡담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화제를 이끌어가는 진행자도 좋았다. 대중재미 B+, 연출기술 A0.



대중재미라고 하더라도 그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하기에 한꺼번에 몰아서 말하는 게 무리다. 이 프로그램이 음악과 미술에만 초점을 두고 있기에, 먹고살기에 바쁜 사람이나 예술보다는 스포츠에 몰입하는 사람들에게는 ‘괜한 똥폼’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중산층에 나이가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서 ‘인문학의 교양과 품격’에 목마른 사람들,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는 재미가 A0쯤 될 법도 하다. 참 괜찮은 교양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상당히 오랫동안 장수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 갑작스레 막을 내렸다. “어어, 왜 이래?” 두어 달 전에 진행자가 바뀌면서 재미도 줄어들고 연출기술도 떨어진다 싶더니, 그 사이 연출팀에 무슨 변고가 생겼을까? KBS노조파업이 엮여있을까? 남의 집안 속사정을 어찌 알겠나!

일요일 아침10시,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TV쇼 진품명품]과 함께 2시간 동안, 한가한 맘으로 아기자기하게 즐기던 쏠쏠한 재미를 못 만나니 못내 서운하다.

<명작 스캔들, 다시보기> http://www.kbs.co.kr/1tv/sisa/scandal/vod/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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