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호남학이다
이제는 호남학이다
  • 강정채 전 전남대 총장
  • 승인 2012.05.3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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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채 전 전남대총장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함께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 잘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역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생학적으로 보면 야문 놈만 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요즘 각종 식품에서 종자 개량을 한 우생학적으로 뛰어난 유전자변형농산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식품 생산이 많아졌다. 생물의 유전자 중 유용한 유전자만을 취하여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와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우리 사회가 GMO처럼 야문 사람만 산다면 어떻게 될까?

호남을 키우는 학문 '호남학'

모든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가정과 고향이다. 그 삶의 터전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살피는 것은 하나의 학문이다. 호남의 삶의 역사, 철학, 과학을 보자는 것을 호남학이라 할 수 있다.

1980년 이후 호남학에 대한 논의들이 모아졌다. 왜 호남은 가난하고 실의에 빠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문제를 명확하게 진단하고 답을 제시한 명쾌한 진단을 그동안 보지 못했다. 그래서 호남학 연구를 통해 그 해답을 풀어가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소외된 것은 정권을 가진 자들의 잘못이라는 남탓을 하며 정치적인 소외, 경제적인 낙후의 이유를 그들에게 돌렸다. 자기비하에 빠져 자신감을 상실하기보다 언젠가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러야 한다.

호남학이 할 일은 가장 한국적인 땅으로서 보물창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이제 호남이라는 논리적인 주장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한국을 이끌어주는 땅이 호남이다.

호남은 우선 민중의 숨결이 진하게 배인 유적과 유물이 산재한 가장 한국적인 땅이다. 낙안읍성, 고창 모양성, 진도 남도석성, 여수 방답진성 등 우리의 유적에서 옛 삶을 찾을 수 있다.

화순 운주사, 모악산의 미륵사상 등은 민중사상의 현세적 표현이며 화순과 고창 등지의 고인돌은 세계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유적은 남도의 역사적 삶을 나타내는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나라를 키운 인물의 고향, 호남

동학과 5.18은 민주화 노력의 소산이며 특히 5.18 기록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다.

호남은 한국 역사의 중요한 길목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다. 유배 온 사람들을 감싸고 문화를 키워냈으며 수많은 국란과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백성의 나아갈 길을 밝혔던 것이다.

박상, 송순, 기대승, 김인후, 최부, 유희춘, 최산두, 양팽손 등 곧은 기개의 호남 사림을 키워 의를 좇고 민중을 살피는 정신의 맥을 일으켰다. 고경명, 김천일, 김덕령 등 민족과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의정신과 강인한 절의정신이 임진왜란, 동학농민전쟁, 한말의병, 항일독립운동, 5.18민중항쟁 등이 그러한 정신적 소산이다.

유형원, 위백규, 정약용, 하백원 등은 실천의 정신으로 호남의 실학을 키워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실사구시의 실천정신을 가졌다. 또 불교에서도 도선, 보조, 초의, 서산 등선 사상 등 새로운 종풍을 일으키고 국난에는 과감히 떨치고 일어난 큰 스승들의 요람이 바로 호남이다.

호남은 신명과 끼, 한국예술의 원형을 빚은 땅이다. 호남에는 가장 민족인 노래 판소리와 담양과 화순, 나주 등지에 산재한 누정과 원림에서 사상과 시심을 나눈 묵객의 고향이다.

특히 현대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호남의 역사와 사람을 바탕으로 이야기들을 빚어온 조정래, 송기숙, 최명희, 이청준, 김승옥, 한승원, 임철우, 공선옥 등의 소설가와 김영랑, 김현승, 박용철, 김지하, 김준태, 김남주, 황지우, 곽제구, 박노해 등의 시인들의 뚜렷한 봉우리들이 있다.

이웃을 보듬고 세계를 보듬자

그런가하면 유서 깊은 화맥이 호남의 미술을 보여준다. 호남불교미술의 자랑스러운 전통 속에 사실성의 의미를 천착했던 조선 중기 화가 윤두수, 양팽손, 송수면 등과 5대에 걸쳐 화맥을 전수하고 있는 허백련과 허건 등의 남종화의 맥, 한국 인상주의 화풍의 선구자 오지호, 강원룡과 양수아의 실험정신 등이 이 땅의 예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한 결실로 이제 민중화의 전통이 이어가고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술사적인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미래로 열린 땅과 바다는 어떠한가. 완도의 청해진에 동북아 교류의 거점이 있었고, 2천여 개가 넘는 아름다운 다도해의 섬들에는 천연기념물이 많고 900㎢의 광활한 갯벌과 리아스식 해안은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여수엑스포가 열리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제 호남학은 호남을 바로 알고 그 정체성을 깨우고 역사적 자산에서 미래의 발전전략을 찾는 학문으로 정착되고 있다. 이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우고 미래의 세상을 설계하는 일에 우리가 무엇을 보탤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몸이나 제 고향을 사랑한다. 모든 사람이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 나를 보듬고 이웃을 보듬고 호남을 소외시키는 잘못한 생각들, 정치경제적으로 호남을 핍박하는 사람들까지 보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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