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학 시인,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 펴내
김병학 시인,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 펴내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2.05.10 2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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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평원에서 들려오는 방랑자의 노래
▲ 김병학 시인

올해로 카자흐스탄 거주 21년째를 맞이한 신안 출신 김병학 시인이 두 번째 시집을 펴냈다.

김병학 시인은 2005년에 첫 시집 ‘천산에 올라’를 펴낸데 이어 7년 만에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로 다시 독자들과 만난다.

시집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는 총 4부로, 제1부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 제2부 방랑자의 노래, 제3부 님에게 바치는 노래, 제4부 꿈꾸는 자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8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집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이 시들 대부분은 시인이 중앙아시아 광야에서 하늘과 지평선을 바라보며 쓴 것들이다.

김병학 시인의 행적은 그동안 언론 매체를 통해 간간이 알려졌다. 그는 재소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1992년 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갔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첫 시집을 펴냈다. 연이어 재소고려인과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 소개하는 일에 뛰어들어 재소고려인 구전가요를 집대성해 고려인 민중사를 복원하였고, 카자흐스탄 고려인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에세이집을 냈다.

또한 시인은 카자흐스탄 여러 민족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여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였고, 재소고려인 최고 극작가의 파란만장한 행적을 정리하고 흩어진 작품들을 찾아 전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최고의 지략과 용맹을 갖춘 전설적인 항일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의 육필일기를 국내 최초로 정리하는 등 시인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독특하고 남다른 행적에서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듯이 김병학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 엮인 시편들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시들과는 내용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무엇보다도 견인불발과 칠전팔기의 기상이 서려있고, 대륙적 기질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시행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호방함과 광대한 정신이 시세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평원의 모진 비바람에 맞서 거침없이 써내려간 시여서인지 비극과 슬픔을 주제로 하여 쓴 시에서조차 굳은 의지와 웅혼함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중앙대학교 교수 이승하 시인은 마치 이육사의 시 <절정>을 보는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시에 펼쳐진 시간과 공간의 폭도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넓다. 시간은 문명시대를 넘어 빅뱅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뒤로는 지구 종말에까지 맞닿아있다. 공간은 하늘초원과 하늘바다를 지나 마음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이승하 교수는 “김병학 시인의 시편은 소월과 영랑 이후 유약함과 체념과 비감이 지배해온 한국 주류서정시단에 부족한 대륙적 기질과 남성적 호방함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고 극찬하고 있다.

시인은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을 중앙아시아 고려인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의 삶과 역사를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일을 해왔다. 그런 만큼 그가 고려인을 위해 헌정한 시 <바스쮸베 언덕에서>, <부르지 못한 자장가>, <러시안 목각인형>과 같은 시들은 한국인 중 오직 그만이 써낼 수 있는 시편일 것이다.

게다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연상시키는 형이상학적 비원이 담긴 시들도 다수다. 여기에 소개하는 <눈동자>와 같은 시는 디아스포라의 역사성을 넘어 무한과 궁극의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

누구의 염원이 고인 샘인가
누구의 갈망이 남긴 창문인가
사라진 육신의 흔적들 모여
닫힌 세계의 오솔길을 여느니
시간에 갇힌 기억의 강물 넘쳐
뭇별로 물결치는 사념의 하늘바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앎의 빛다발아
너 하나가 만물을 보듬고 있구나
세계가 여기서 열리고 닫히는구나
영혼이 너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 시 「눈동자」 전문 -

또 시인은 <귀환>이라는 시를 통해 본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 개인을 넘어서 재소고려인과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디아스포라가 갈망하는 귀환의 꿈을 대신하여 표현하는 시로 읽힌다. 오랜 세월을 디아스포라 고려인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의 마음 속 깊은 바람을 읽어내고, 또 시인 스스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면서 체득한 내면의 다짐이 이런 시를 창조해냈을 것이다.

나는 돌아오리라
가버린 곳에서 다시 돌아오리라
지나간 계절과 함께 바람이 되어
구름이 되어 비가 되어
놀라운 천둥이 되어 돌아오리라
백골이 진토 되어 몸이라도 있거나 없거나
넋이 되어 얼이 되어 혼백이 되어
새로운 꿈이 되어 돌아오리라
신비한 관여자가 되어 돌아오리라
거센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흔들리다 넘어지고 말지라도
다시 일어설 춤꾼으로
스스로 등불을 밝히는 지혜로움으로
넉넉한 강인함으로 나 다시 돌아오리라.
- 시 「귀환」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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