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리산을 찾은 우리들은 산만큼이나 삶이 깊고 크고 진지했다. 그런 의식 속에서 만나서였는지 무덤 앞에 고개 숙인 할미꽃이 왜 그리 슬프고 무겁게만 느껴졌는지 지금도 그 잔영이 가슴 언저리를 시리게 한다.
며칠 전엔, 읍사무소에 우연히 들렀다가 정원에 옮겨 심은 듯 잘 가꾸어진 할미꽃을 만났다. 햇빛이 좋아 쪼그리고 앉아 찬찬하게 요리조리 들여다보았다.
이름에 떠밀려서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고, 고개 숙여 제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볼수록 참으로 예쁘고 매력 있는 꽃이다. 풋풋하게 올라오는 새싹들 사이에 피어있는 갓난아이주먹만한 크기의 꽃송이와 기다란 잎자루, 깊고 자유롭게 갈라져 있는 작은 잎이 이색적이다.
보송보송 돋아난 솜털의 포근함 속에는 그야말로 정열의 힘이 솟는 검붉은 꽃잎이 있다. 그 사이에 샛노란 수술들이 신선하고 매혹적으로 박혀있다.
서양에서도 ‘당신은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라는 꽃말을 붙여주었단다. 우리네 할머니의 한없는 사랑의 품을 느끼게 하는 따뜻한 꽃, 할미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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