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천지에 봄이 오네
함평 천지에 봄이 오네
  • 문틈 시인
  • 승인 2012.03.22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판소리 호남가에 함평천지라는 노래가 있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고향을 보랴하고 제주어선 빌려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 구성진 가락으로 남도를 노래한다.
판소리를 잘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남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함평천지 판소리 가락 정도는 귀에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 하필 함평 천지일까. 지금으로 쳐도 고작 군단위의 작은 지역에 불과한 땅을 감히 천지(세상)라고 노래했을까.

말할 것도 없이 그 노래를 처음 부른 사람에게 있어 함평천지는 그의 전 세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함평을 ‘천지’ 라고 한 것이다. 얼른 생각하면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결코 우스운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말하자면 함평천지라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했다. 우선 표면적으로 보아도 지구는 둥글게 생겼으므로 사람이 어디에 서 있던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중국이라는 나라 이름에 주눅 들지 말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역시 지구의 중심이라고 했던 것이다. 뭐, 그 논리는 제쳐두고 우리는 지금 지구의 중심 함평 천지에 봄이 오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소식이다.
해마다 봄은 오는 것이 불변의 우주질서이긴 하지만 꽝꽝 얼어붙은 땅에 푸른 새싹이 돋는 기적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한번 머릿속으로 그려보라. 학다리들, 손불면, 해보면, 엄다면의 산에 들에 푸른 싹들이 돋는 것을.

그것들은 겨우내 땅 속에서 지하운동을 한 끝에 그 여린 잎들은 마침내 언 땅을 뚫고 푸른 함성을 지르며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엄동설한 속에서 벌인 가열찬 지하운동의 결과라는 것을 짐작해보라.
그뿐이랴. 벌써 노란 유채꽃이 필 차비를 마쳤고, 덩달아 매화, 진달래, 철쭉, 목련, 라일락 등 온갖 봄꽃들이 무슨 계시라도 전하는 양 피어나는 모습을 우리는 황홀한 심사로 보게 될 터이다. 우리가 세계의 중심에 살고 있음을 증거하듯 우리 앞에 현현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시사철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호명한다. 언제부터 그래왔을까. 그런데 나는 다르게 부른다. 겨울, 봄, 여름, 가을로 말이다. 왜냐고? 어떻게 봄이 일 년의 첫 계절로 올 수가 있는가? 일 년의 첫 계절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겨울이다.
혹독한 겨울의 시련을 거쳐 푸른 봄이 탄생한다고 보아야 이치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겨울이라고 하는 혹독한 시련이 없이 어떻게 화려한 봄이 온단 말인가. 갑자기, 불쑥, 느닷없이, 봄이 온다고? 인생살이에 그런 일은 없다.

이 세계가 봄부터 먼저 시작한다고 하는 것은 납득이 잘 안 간다. 시인 셀리도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나는 일 년의 첫 계절을 겨울이라고 본다. 그건 그렇고, 봄이 어떻게 오는지 우리는 잘 지켜보아야 한다. 춥고 배고픈 겨울을 견뎌낸 나에게 봄은 마치 희망의 경전을 펼쳐 보이는 것만 같다.
봄은 우리에게 밭이랑에 씨를 뿌리라고 한다. 콩을 심으라 한다. 대지의 흙냄새를 맡으라 한다. 팔소매, 바짓가랑이를 걷어부치고. 함평천지에서 우리는 지금 할 일이 많도다. 우리나라에 꽃피는 봄의 공화국을 만드는 일 말이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