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저린 5.18기억, 구술집으로 다시 재구성
뼈저린 5.18기억, 구술집으로 다시 재구성
  • 김다이 수습기자
  • 승인 2012.03.2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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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여성단체연합이 80년대 광주의 쓰라린 아픔 5.18 민주화 항쟁의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광주․전남 여성단체 연합은 28일 사직공원 내 예능교회 나드리 찻집에서 ‘광주여성의 삶과 5.18, 그리고 오늘’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여성연합은 2010년에 발행했던 ‘구술로 엮은 광주여성의 삶과 5.18’ 구슬집을 현재까지 살아있는 평범한 시민들과 여성들의 목소리로 재발행을 하기로 했다.

이 날 좌담회는 김상봉 교수(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진행으로 대담자는 이화경(소설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오승용(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 정경운(편집자)씨가 참석해 5.18당시의 심경을 재현했다.

한편, 김상봉 교수는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또 다른 목소리를 듣고 5.18당시 대다수의 광주시민 바닥정서를 표출하기 위해 발간했다”며 “구술집이 비매품이여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재발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 들으면 쾌감 - 오승용(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담양에 있어 직접적으로 5.18을 체험하진 못했다.
가장 기억 남았던 5.18의 기억은 주산시험을 보러가려했지만 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다.
본인은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나중에 동아리 활동으로 인해 5.18을 머리로 지각하기 시작하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활동 기간 중에는 아직도 5.18이 아직도 뭐 할 것이 더 남아 있느냐 식의 주변반응들이 허다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왜 광주시민은 아직까지 분풀이를 하고 있느냐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착시현상처럼 꼼꼼히 따져보면 제대로 된 사항이 없다.
실제로 5.18관련 연구 ․ 발굴 할 것들이 수없이 눈에 보이고 안 된 부분이 많다.
이 구술집은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고, 손가락질도 하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최후의 항쟁까지 남은 사람들의 심정을 내용으로 꾸려간다.

 레코트판 튀듯 5.18 트라우마 반복 -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10년 전에 5.18을 알게 된 것은 피해자가 상담하러 왔었다.
상담자들은 고문을 당했던 그 장소, 그 기억이 레코드판 튀듯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고, 그 당시 기억은 너무나 생생해 현재의 기억은 덜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한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아있었던 자들이 5.18이 트라우마로 변질되어 가장 위로받고 지지받기 위한 사람들에게 5.18이야기를 꺼내면 조용히 넘겨버리는 것에 대해 가슴속 비수처럼 있을 것이다.

살아 남은자의 비겁함, 죄책감 - 이화경(소설가) 

   
 

80년대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전남여고를 다녔다. 학교는 동부경찰서와 충장로, 금남로, 도청이 모든 장소가 가까워서 5.18 핵심지역에 있었다.
당시 중간고사기간이라 “이 망할 놈의 나라, 전쟁이라도 나서 중간고사를 안 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뱉은 순간 학교 담벼락이 와르르 무너졌다.
철없는 여고생들끼리 한 말이 현실로 이루어져 공수부대는 학교를 처 들어가 박살을 냈다. 이 후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말을 함부로 하면 처형당하고 잡혀 들어가겠다 느끼게 되었다. 5.18을 경험한 나로써 구술집을 한 페이지 읽을수록 가슴이 저려왔다.

온가족이 겪은 5.18 - 정경운(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최루탄이 날아오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학교가 휴교까지 하였다. 공수부대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는 일상이었다.
5.18 이 후 삶은 어처구니없는 삶이 되었다. 할머니는 5월 어머니회 활동을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이모는 5.18을 위해 일생을 꾸준히 힘써온 5.18국립묘지 소장 박경순이었지만 50세가 안된 채 숨을 거둬 30년간 가족은 박살이 났다.
이번 재발행 구술자 30여명을 선정한 것은 평범한 광주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구술을 받고 연장선으로 5.18을 이어나가려 한다.
처음 기획 컨셉은 ‘열정’이었어도 88년부터 계속해서 구술을 한 적극적인 구술자들마저도 시간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개인의 언어가 아닌 비슷한 키워드로 표현되며 개인의 생각들이 거세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시민들, 여성들을 목소리를 구술 집에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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