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여성단체 연합은 28일 사직공원 내 예능교회 나드리 찻집에서 ‘광주여성의 삶과 5.18, 그리고 오늘’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여성연합은 2010년에 발행했던 ‘구술로 엮은 광주여성의 삶과 5.18’ 구슬집을 현재까지 살아있는 평범한 시민들과 여성들의 목소리로 재발행을 하기로 했다.
이 날 좌담회는 김상봉 교수(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진행으로 대담자는 이화경(소설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오승용(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 정경운(편집자)씨가 참석해 5.18당시의 심경을 재현했다.
한편, 김상봉 교수는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또 다른 목소리를 듣고 5.18당시 대다수의 광주시민 바닥정서를 표출하기 위해 발간했다”며 “구술집이 비매품이여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재발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 들으면 쾌감 - 오승용(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담양에 있어 직접적으로 5.18을 체험하진 못했다. 가장 기억 남았던 5.18의 기억은 주산시험을 보러가려했지만 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다. 본인은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나중에 동아리 활동으로 인해 5.18을 머리로 지각하기 시작하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활동 기간 중에는 아직도 5.18이 아직도 뭐 할 것이 더 남아 있느냐 식의 주변반응들이 허다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왜 광주시민은 아직까지 분풀이를 하고 있느냐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착시현상처럼 꼼꼼히 따져보면 제대로 된 사항이 없다. 실제로 5.18관련 연구 ․ 발굴 할 것들이 수없이 눈에 보이고 안 된 부분이 많다. 이 구술집은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고, 손가락질도 하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최후의 항쟁까지 남은 사람들의 심정을 내용으로 꾸려간다. |
레코트판 튀듯 5.18 트라우마 반복 -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10년 전에 5.18을 알게 된 것은 피해자가 상담하러 왔었다. 상담자들은 고문을 당했던 그 장소, 그 기억이 레코드판 튀듯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고, 그 당시 기억은 너무나 생생해 현재의 기억은 덜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한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아있었던 자들이 5.18이 트라우마로 변질되어 가장 위로받고 지지받기 위한 사람들에게 5.18이야기를 꺼내면 조용히 넘겨버리는 것에 대해 가슴속 비수처럼 있을 것이다. |
살아 남은자의 비겁함, 죄책감 - 이화경(소설가)
80년대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전남여고를 다녔다. 학교는 동부경찰서와 충장로, 금남로, 도청이 모든 장소가 가까워서 5.18 핵심지역에 있었다. 당시 중간고사기간이라 “이 망할 놈의 나라, 전쟁이라도 나서 중간고사를 안 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뱉은 순간 학교 담벼락이 와르르 무너졌다. 철없는 여고생들끼리 한 말이 현실로 이루어져 공수부대는 학교를 처 들어가 박살을 냈다. 이 후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말을 함부로 하면 처형당하고 잡혀 들어가겠다 느끼게 되었다. 5.18을 경험한 나로써 구술집을 한 페이지 읽을수록 가슴이 저려왔다. |
온가족이 겪은 5.18 - 정경운(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최루탄이 날아오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학교가 휴교까지 하였다. 공수부대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는 일상이었다. 5.18 이 후 삶은 어처구니없는 삶이 되었다. 할머니는 5월 어머니회 활동을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이모는 5.18을 위해 일생을 꾸준히 힘써온 5.18국립묘지 소장 박경순이었지만 50세가 안된 채 숨을 거둬 30년간 가족은 박살이 났다. 이번 재발행 구술자 30여명을 선정한 것은 평범한 광주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구술을 받고 연장선으로 5.18을 이어나가려 한다. 처음 기획 컨셉은 ‘열정’이었어도 88년부터 계속해서 구술을 한 적극적인 구술자들마저도 시간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개인의 언어가 아닌 비슷한 키워드로 표현되며 개인의 생각들이 거세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시민들, 여성들을 목소리를 구술 집에 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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