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학생의 광주(2)-그가 생각하는 광기의 시대
한 신학생의 광주(2)-그가 생각하는 광기의 시대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 승인 2012.02.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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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상임대표

같은 시대를 살더라도 기억하는 또는 기억되는 경험들은 다르다. 행복한 경험, 아픈 경험, 슬픈 경험 등 갖가지이겠지만, 정신적 외상을 유발하는 지독하게 아픈 경험들을 그냥 보듬고만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존방법이다.
발설하고 이해하고 해소해서 심리적 외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정신적 파탄, 우울증 등으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는 개인의 경험에서만이 아니라 집단경험에서도 나온다는 사실들을 신학생은 극명하게 지적한다.
‘독일의 광기를 만든 사람은 히틀러임과 동시에 독일의 광기가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은 1944년초 미국의 OSS극비보고서 「히틀러의 정신분석」에서 지적한 사항이다.

신학생은 “1980년 5월의 광기는 전두환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들 모두가 지닌 광기가 아니었을까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권력은 지지하는 군중이 존재함으로써 성립하고 보존된다.
가난 극복은 생존조건에 필수적인 것이지만 가치상실 가치절멸의 한국사람들의 지도자 선호는 그간의 반민주 독재 권력이 오만하게 서식했던 저간의 현대사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군중 없는 권력이 가능했을까?
민주세력을 반국가로 몰고 냉전의 현실을 반공 천국으로 치환하여 주권재민을 무색하게 만들면서 호남 포위․호남고립화로 그들만의 신명으로 유신과 복지가 억압자들의 특선품일 때 행여 많은 우리들은 불의한 권력의 부역자들은 아니었을까?

두려움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변명할 밖에 없는 것이 슬픈 인간조건이겠지만, 그 시간 속에 피해자는 양산되고 광주의 도살극은 모든 망나니들의 칼춤을 압도하였다.
역사의 흔적은 지울 수 없겠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게끔 되돌리는 것도 결국 사람의 몫일 진데,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전두환․노태우가 구속되었어도 전 시대의 잔여는 쉽게 청산할 수 없었던 듯싶다.
신학생의 기억으로는 전두환․노태우 구속을 지휘한 서울지검장은 전두환의 1980년 국보위 내무분과 위원이었고 5․18특별법 제정의 기초위원장은 5공헌법의 선진성을 역설했던 민정계의 현경대.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으로 5공 수사에 일조했던 최병국은 1982년 부산지검 공안검사로 신학생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조사받을 때 ‘전두환 정권은 군사파쇼’라고 말하는 신학생에게 ‘너는 왜 파쇼를 싫어하니? 나는 파쇼가 좋은데’하고 신학생의 고통과 오뇌를 비웃는 능청을 떨고 있었다.

이러한 공안검사가 어찌 최병국 뿐이었으랴? 박정희․ 전두환의 독이빨 역할을 그야말로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입신의 금자탑을 쌓았던 사람들의 철면피를 당시 신학생처럼 영어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다 안다.
역사치매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이 망각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그렇게 살고 지금은 지금대로 날렵하게 살아가는 것이 여세출의 달인인 것을 신학생은 양해하지 못했던 듯싶다. 사람들의 여세출을 양해하지 못하는 신학생의 남은 삶이 순탄하지 못할 것 같지만, 아직도 5월 영령들에 대한 죄책감에 가슴 조이면서 삶이 아무리 피곤하고 시진할지라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려는 신학생의 양식과 기개와 결단이 아름답고 대견하다.
그래서 선인들이 밀알과 소금으로 보통의 사람들을 경계했음을 알 것 같다. 파김치처럼 쩔어버린 생활 속에 이제 다시 용감해지기는 역불급의 욕심일 것 같아, 대신 비겁과 방관이라도 경계해야 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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