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나라로 간 여자
고양이 나라로 간 여자
  • 문틈/시인
  • 승인 2012.02.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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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들은 대체 무엇을 먹고 사는 것일까. 전에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한데 최근에야 그 해답을 알았다. 길고양이들은 어떤 중년 여자가 갖다 주는 먹이를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호수공원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겐 그것이 진실이다.

그 여자는 남편과 이혼할 때 받은 약간의 위자료를 쪼개 쓰며 5년째 홀로 살고 있다. 직장도 없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두 마리와 허름한 20평 아파트에서 산다. 위자료도 시간이 지날수록 반비례로 줄어들어 밥벌이라도 될까 해서 편의점을 냈다가 돈만 까먹고는 1년 만에 두 손을 들었다.

그래도 살아 숨 쉬고 있으므로 무엇인가를 해야겠기에 호수공원에 떼 지어 사는 고양이들에게 먹이 갖다 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이 일도 장난이 아니어서 한 달에 고양이 먹이 구입비로 5만원이나 든다.
신체 건강한 50대 초반의 이혼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큰 도시에서 이렇다 할 것이 없다. 김밥말이나 아파트 청소 같은 것밖에는 말이다. 김밥말이나 아파트청소 일을 하대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아쉬워도 그런 일들이 육체적으로 힘든 사람이 있는 법이다.

며칠 전 어떤 독신여자의 시신이 자기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사망한 지 오래되어 발견되었는데 기르는 애완견에게 시신이 훼손되어 있었다고 하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애완견조차도 주인의 부동자세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죽은 그 여자는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을지 모른다.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외로운 도시여자의 비극의 극단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만하다.

호수공원의 고양이들을 공원관리소에서 한 번도 전수조사를 해본 일이 없으므로 몇 마리나 사는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먹이를 가져다주면 고양이들이 그것을 먹고 번식하여 호수공원은 고양이 나라가 되어버린다고 해서 절대로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 공원관리소의 엄한 관리수칙이다. 누구도 호수공원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사실 호수공원에서는 어미고양이가 귀여운 새끼고양이들을 달고 다니는 것이 이따금 목격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는 고양이들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원관리소 몰래 고양이에게 먹이 가져다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길고양이들이 번식해서 호수공원이 고양이 나라로 변해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 여자는 생각한다.
관리소의 셈법이 정의로운 것이라면 아프리카인들을 돕는 것도 같은 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동족분쟁이 잦은 아프리카에 원조를 하면 그 원조금이나 물품이 반군에 넘어가 반군세력을 강화시켜주고 반군이 강화되면 아프리카의 동족 살륙의 비극이 끝나지 않는다는 논리 말이다.

살아 있는 것은 살아야 한다. 이것이 자연법칙이다. 그 여자는 돈도 절약할 셈으로 꼼짝 않고 한동안 집에 처박혀 지냈는데 그것은 정말 택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 있으려면 무엇인가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온몸이 저리게 깨달았다.
하는 일이라는 것이 하필 자기 돈 써가며 공원의 길고양이게 먹이 갖다 주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하는 일이 하필 국민의 세금을 월급으로 받는 국회의원일 수도 있는 것처럼 그 여자의 삶엔 그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인 것이다. 삶이 결코 지긋지긋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한 일로서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기 이상으로 지금 그 여자에게 보람 있는 일거리가 없다.

일거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것이 꼭 정부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부에 의탁할 것 없이 할 일을 찾아 무엇인가 해야 한다. 살아 있는 한 움직여야 한다. 너도 나도 무엇인가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뒷산 언덕에 몇 십년 후를 그리며 도토리 한 개라도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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