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명한]외로운 길 화려한 길
[리명한]외로운 길 화려한 길
  • 리명한 (작가)
  • 승인 2012.02.17 13: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리명한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보다는 화려하고 편안한 길을 선택하려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런데도 이 세상에는 세속적인 자신의 행복보다는 타자인 다중을 구해야 한다는 정의감에 고난과 희생의 길을 택한 분들이 적지 않았었다.

기울어져 가는 왕조를 부축해 보려고 가족을 버리고 뛰어나가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졌던 의병들이 있었고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국을 되찾고 모순에 찬 세상을 바꾸어버리기 위해서 험악한 타국의 산골짜기와 황막한 대륙의 벌판에 쓰러져 간 독립군 혁명군들을 생각하면 입으로 옮겨가던 숟가락을 멈추고 숙연해진 가슴을 쓰다듬기도 한다.
그러했던 시기에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구자 역시 적지 않았으니,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일 년에 하번씩만이라도 그런 일들을 되새겨보는 양심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추악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문의 역할

<독립신문>이 창간된 지도 어언 일백십육 년이 되었다. 1896년, 이 신문이 최초의 민영일간지로 모습을 드러냈었을 때 그것을 받아 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등불을 얻은 듯 감동에 젖어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그들은 이 신문을 통해 대륙의 동쪽 끝에 붙은 후진된 한반도를 삼키려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있는 제국주의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고 어째서 자주독립이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인권이 무엇이고 남녀는 왜 평등한 것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하였으며 스스로가 서 있는 위치를 깨닫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었다.

이와 같은 거친 파도 속에서 전개된 근대화의 과정에서 언론은 막중한 위치에서 헤드라이트가 되고 나침반이 되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망국을 부추기기고 식민지적 지배를 합리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으니 3.1운동을 거치면서 현실화된 민족적 자각을 바탕으로 출발했던 이 땅의 대표적인 신문들까지 30년대를 거치면서 친일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은 초지를 견지하지 못한 비극적 결과라고 하겠다.
이르기를, 신문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도 사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했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신문들은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데다가 자본의 쇠사슬에 묶여 운신의 자유마저 잃은 존재들이니 여겨볼수록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참다운 지역언론을 주창하고 출발했던 <시민의 소리>가 열한 돌을 맞게 되었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신문의 숲 속에서 그것도 물질적 바탕마저 없이 시작했으니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걱정했었는데 끈질기게 분투해 왔으니 가상한 일이다.
출발점에서는 새로운 다짐 속에 목탁을 넘은 북소리가 되겠노라 자부했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일이 어찌 용이한 일이었겠는가. 그렇더라도 초지를 버리지 않고 오늘까지 버티어 왔으니 소중한 모습이 장하기만 하다. 어려움이 있다고 방향전환을 하거나 포기해버렸다면 무슨 꼴이 되었겠는가. 역시 광주였다.

2012년을 전환의 해라고 한다.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쇠퇴하고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서 신문의 책임 역시 무겁게 되었다. 이런 판국에 큰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시민의 소리>는 몸집이 작아 힘이 부친다.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다. 목소리에 진리와 정의가 담겨 있다면 만인의 가슴을 울려 세상의 방향을 바꾸고 시민들의 얼굴에 웃음을 실어다 주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광주정신을 밑심으로 삼아 출발한 신문이 아닌가.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