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의 세상보기/어머니께 드리는 선물
문틈의 세상보기/어머니께 드리는 선물
  • 문틈/시인
  • 승인 2012.02.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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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올해 여든다섯이다. 귀만 좀 어두울 뿐 아직 정정하시다. 하루 한 번 가까운 마을길에 산책도 나가시고 이틀에 한번은 이태째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매 끼니 밥을 손수 해 잡수신다. 정성스럽게 사신다. 일요일엔 성당에도 가시고.

그런 어머니가 나는 참 안쓰럽다. 어머니는 한사코 자식한테 얹혀 사는 것을 마다 하신다. 한 집에 모시고 지내야 하는데 나는 그럴 형편이 못된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뵈러 몇달에 한번 나는 고향에 간다. 누가 봐도 나는 완전한 불효자다. 이번 겨울에는 나는 감기가 들어 한 달째 집안에 콕 박혀 지내고 있는 터라 그마저도 못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매일 전화로 (콜록콜록) 안부를 묻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맙다고 하신다. 내가 거의 매일 전화를 하는 것은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처럼 홀로 계신 늙은 어머니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세파에 시달려온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아보니 인생이란 뭐, 그렇게 재미있고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살아 있는 생명들은 모두가 슬프다는 것,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고 지내야 한다는 것, 나는 천리를 그렇게 깨닫고 있다. 가족간에, 친구간에, 이웃간에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다만 건강하게 사는 것만으로 행복해하시는 듯하다. 판사 아들도 없고, 부자 아들도 없지만 형제간에 우애하고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별 탈 없이 지내는 것을 큰 복으로 여기시는 듯하다. 그래도 나는 참 아쉬움이 많다. 어머니께 잘해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한이다.

나도 자식들 거두느라 마음 쓰는 일이 그칠 새가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은 다락같은데 내 현실이 그것을 넘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나이만 들어간다.
나는 언젠가 큰 마음을 먹고 어머니를 호강 한번 시켜드릴 셈으로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어머니, 맨날 그 옷만 입고 계셔요? 오늘 백화점에 가서 좋은 옷 한벌 사드릴게요." 어머니의 팔을 잡아 끌었다. "아니다. 이 옷이 어쩧다고 그러냐. 따뜻하고 때가 안타서 좋기만 하다."

한사코 마다 하셨다. 칠순때는 자식들이 해준 털잠바를 입으시곤 그렇게도 좋아하시더니. 오랫만에 효도를 해보려는 내 야윈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자꾸만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자꾸 내가 조르자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이제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늙은) 네 엄마한텐 안어울린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려고 등을 돌려 파리똥으로 얼룩진 천장을 멀거니 한참 쳐다보았다.

눈치빠른 어머니는 주름으로 쪼글쪼글해진 얼굴을 하고 내 손을 이끌었다. "오랫만에 오리고기집이나 갈꺼나."
사람들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는 이런저런 일로 효도를 못하다가 돌아가시고 나서 값비싼 수의를 입혀드리고, 오동나무관을 마련해드린다 어쩐다 한다. 결코 어머니가 원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을 위해서.

그것은 선물이 아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선물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되레 어머니한테서 이 평생 늘 선물을 받고 살아왔다. 어머니가 이 세상에 살아 계신다는 것만으로, 내 마음 속에는 어린 날의 무지개 동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어머니가 내게 준 큰 선물이다.

내가 몇 살을 먹건 어머니 앞에서 나는 어린 자식이기 때문에 동심을 잃지 않고 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그러므로 오래 살아 계셔야 한다. 그리고 새옷 선물은 어머니가 젊었을 적에 해드려야 한다. 뒤늦은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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