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는 나를 위하여
보잘것없는 나를 위하여
  • 문틈/시인
  • 승인 2012.02.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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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조개를 넣은 보릿국, 푸른 기운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봄동 무침, 파래가 약간 섞인 구운 해우, 연근간장졸임, 국물이 시원한 백김치, 그리고 시금치나물. 아내가 차려놓은 내 아침 밥상이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아침 밥상을 앞에 두고 먼저 아내에게 잘 먹겠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이 식단 가운데 나는 특히 보릿국을 아주 좋아한다. 시골 사시는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해마다 겨울이면 재래시장에서 어리고 푸른 보릿잎을 한 보따리씩 사서 보내주신다.

아내는 이 보릿잎을 깨끗이 씻어서 몇 날 먹을 만큼만 따로 내놓고는 나머지는 여러 비닐봉지에 나누어 냉동실에 넣어둔다. 여름까지 아껴 먹는 우리집 식탁의 특식인 것이다. 난 육고기를 먹지 않으니 이것으로 대만족이다.

어떤 때는 아내가 칠산바다산 한 마리 조기구이를 올려놓을 때도 있다. 사실 이 고마움은 아내한테만 보내는 것이 아니다. 내 밥상머리에 올라온 식단을 위해 씨 뿌리고 거름 주고 김매고 추수하고 다듬은 수많은 농부들, 찬 바다에 나가 그물질해서 생선을 건져온 그 수많은 어부들, 그리고 그 생산품을 트럭으로 농수산물집하장으로 실어 나른 운전기사들, 그것을 시장이나 마트로 옮겨와 파는 도시의 상인들에게 보내는 감사이기도 하다.

나는 어느 날 아침 밥상을 앞에 놓고 이 먹을거리에 애쓴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한참을 계산해보았다. 먼저 밥. 쌀과 보리, 콩 농사에 동원된 사람들, 보릿국에 들어가는 보릿잎과 된장, 마늘, 조개, 참깨를 기르고 거둔 사람들. 이런 식으로 아침식탁 마련에 동원된 모든 도우미(?)들을 헤아려 보니 연인원이 1천명이 넘었다.

모르긴 하지만 성군 세종대왕의 수라상도 내 아침밥상에 동원된 사람만큼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으로 마련되었으리라. 그 모든 사람들 한 사람마다에게 감사를 표할 것 같으면 무척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난 참으로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펜대를 굴리며 세상이 어쩌고저쩌고 볼멘소리나 끄적거리며 목에 힘주고 살아왔으니 이런 푼수도 없는 것이다. 내 아침밥상이 마련되기까지 수고와 땀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번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지 않은 채 이날 입때껏 살아오지 않았는가싶다.

겨울 눈 쌓인 밭고랑에서 눈을 헤치며 시린 손으로 어린 보릿잎을 솎았을 저기 함평이나 무안, 나주 농부들처럼 내가 누구의 아침밥상을 위해 일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 보잘것없는 나를 위하여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내가 심히 부끄러워졌다. 나라는 존재는 군말 없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을 받고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침밥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야말로 진정으로 인생을 보람있게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동안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를 보고 비판해왔는지도 모른다. 누가 어쩌고저쩌고, 무엇이 이러쿵저러쿵. 비판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감사를 바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들이 혹여 내 아침밥상을 위해 땀 흘린 사람들이거나 그 가족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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