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참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참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문틈 시인
  • 승인 2012.01.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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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보도를 보니 참새의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겨울에 재송쿠리에 받침대를 세워놓고 그 밑에 서숙을 뿌려 참새들이 모이를 탐해 몰려들면 문틈으로 보고 있다가 줄로 연결된 받침대를 잡아채 참새를 잡아 구워먹던 아득한 추억이 있다.

그 많던 참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짐보따리를 따라 대처의 아파트 단지로 온 참새들은 먹을 것도 없는 인도에 내려와 무엇인가를 쪼는 시늉을 하다간 사람과 마주치면 포롱포롱 아파트 단지에 줄지어 서있는 느티나무 우듬지로 날아올라간다. 논밭에 무리지어 날아와 벼이삭을 축내던 참새들이 지금은 논도 밭도 없는 시멘트로 된 도시로 사람들을 따라와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

‘공중에 나는 새들은 누가 기르지 않아도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산다’는 성서의 말씀이 생각난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참새들은 먹을 것 때문에 걱정이 많은 듯하다. 옛날 시골에서 보던 참새들은 어릴 적 기억에 따르면 통통한 몸집이었던 것 같은데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 보는 참새들은 왜소하고 버쩍 말라 보인다. 참새들이 쪼아먹을 솔씨 한 톨 없는 이 삭막한 아파트 단지 어디서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얻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쯤부터였는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참새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몹시 짠하고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참새들이 다시 우리 아파트 단지로 날아오기만을 지켜 보았지만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제 참새들이 보기 힘들어지고 나니 갑자기 내가 사는 세상이 쓸쓸해진다.

참새를 한 마리라도 돕고 싶은 마음으로 요즘은 산책을 나갈 때면 참새를 만나면 주머니에 미리 쌀 한 줌을 넣고 나가 길바닥에 뿌려주기도 한다. 가다가 뒤돌아보니 예닐곱 마리의 참새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와 흩어진 쌀을 쪼고 있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다. 회사 뒷골목에 쌀집이 있었는데 가게에는 쌀 말고도 수수, 보리, 콩, 깨 등속을 팔았다. 바로 옆 담장에 참새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쌀집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참새떼가 일제히 가게 안으로 들어가 먹이를 쪼아 먹고는 주인이 냅다 큰 소리를 치며 뛰어나오면 금방 도망쳐 공중으로 날아오르곤 했다. 날마다 주인과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는 것이다.

나는 어느 날 보다 못해 쌀집 주인에게 돈을 얼마쯤 건네주면서 “저 참새들에게 모이를 조금씩 길바닥에 뿌려주면 안되겠어요?”하고 부탁을 했다. 내가 돈을 낼 터이니 가끔씩 참새들에게 급식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던 셈이다. “내가 모이를 뿌려주면 이 도시의 모든 참새가 우리 가게 앞으로 올텐데요.” 그 돈을 다 당신이 대겠느냐며 주인은 돈을 내게 되돌려 주었다. 무안하긴 했지만 주인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아남아야 할 존재라면 참새도 살아남아야 한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새둥지에 손을 넣어 새알을 만져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홀쭉하고 가냘퍼 보이는 도시의 참새들이 불쌍하고 짠하게 보이는 것은 그 모습에서 어쩐지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 도시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새 가족들이 오순도순 우리가 사는 도시문명에서 도시인과 함께 먹을거리 걱정없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면 아직 다 못 갚은 가계빚을 안고 있는 도시인들이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한갓 미물인 참새의 안위 따위를 나 같은 백면서생이 걱정한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것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삭막한 이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이 어디 참새뿐인가 말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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