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회화 뿌리 윤두서
남도 회화 뿌리 윤두서
  • 오병희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11.12.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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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1668 ~ 1715)는 우리나라에서 풍속화를 처음 그린 작가이자 우리나라 고유의 자유로운 필체의 동국진체(서예)의 시조가 된 남도가 자랑하는 작가이다. 일반적으로 윤두서 하면 국보 제240호 자화상이 떠오른다. 윤두서는 전신사조(인물의 형상에 정신을 담아냄)가 드러난 자화상을 그렸다. 비록 완성본은 아닐지라도 자화상에는 자신이 지녀왔던 온갖 상념과 미의식, 철저한 자기 성찰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눈은 정면을 보고 있으며 굳게 다문 입술은 강한 선비의 기상을 느끼게 한다. 불꽃이 타 오르듯 이마에서부터 한 올 한 올 뻗은 수염은 자유분방하면서 질서 있는 자신을 향한 분명한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의식을 가지고 창작 태도와 화풍의 쇄신을 이끈 윤두서는 사의(표현한 대상의 본질과 특성) 가치를 이해한 문인화가로 영조 대왕은 그를 “아국명화”라며 최고의 대가로 칭송하였다.

윤두서의 작품은 당시 높은 평가를 받아 가짜 그림이 나돌 정도였다. 또한 윤두서는 높은 감식안을 가지고 조선시대 화가를 평한 화평을 남겨 조선 후기 대표적인 수장가인 김광국은 그 글을 참고로 작품을 수집하였다.

실학자로서 윤두서는 옥동 이서와 성호 이익 형제들과 교류하였고 시, 서, 화는 물론 천문, 지리, 수학, 군사학 등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가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 풍속화에서 성현도, 초상화, 미인화, 산수화, 화조 ․ 동물화 등의 다양한 주제와 서양화법 도입 등 파격적인 실험 정신을 한 다양한 작품세계를 구사하였다.

윤두서의 대표적인 그림은 풍속화로 조선 후기 풍속화의 새로운 시대를 연 선구자였다. <나물 캐는 여인>, <돌 깨는 석공>, <짚신 삼는 노인>, <목기 깍는 사람> 등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의 백성들의 생활상을 화폭에 옮겨 민중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 <목기깍기>는 이용후생(기구를 써 의식을 풍족하게 함)을 강조한 실학자로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윤두서가 그린 풍속화는 18세기말 김홍도와 신윤복의 작품보다도 이전에 그려진 작품으로 조선후기 풍속화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윤두서는 서양화법을 수용하여 말을 사실적인 묘사하였다.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는 치밀한 묘사에 주력해서 사실성을 내세운 그림으로 치밀한 세부 묘사를 바탕으로 말의 생리와 생생한 표정을 실제로 가깝게 그려 실학사상에 기초한 사실주의적 회화관이 드러난다.

윤두서는 문인으로서 시서화에 뛰어났으며 사의적인 남종화풍의 회화를 그렸으며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는 독창적인 풍속화와 남종화 등을 남겼다. 이러한 화적은 아들 윤덕희와 윤용에게 영향을 주어 윤두서 일가의 화풍을 이루게 되었다.

윤두서의 작품은 풍속화의 시작을 알리고 남종화풍의 현대적 계승이란 측면에서 중요하다. 18세기초 윤두서에서 시작한 풍속화는 18세기 후기 풍속화의 전성기를 연 김홍도와 신윤복에 이어지는 점에서 한국미술사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또한 남종화는 조선 말기 소치 허련에 영향을 주어 남도를 중심으로 남종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점에서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남긴 남도의 대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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