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서의 문화난장-그곳에 가고 싶다
정인서의 문화난장-그곳에 가고 싶다
  • 정인서
  • 승인 2011.12.05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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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꿈을 꾸면 하늘을 날아가는 때가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앞으로 기울려 걷기도 하고 날기도 하는 꿈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슈퍼맨 등이 가금 집을 빠져나와 하늘을 천천히 나는 모습과 비슷하다.

그렇게 가다 보면 집이며 도로를 지나치며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문으로 거실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사무실 빌딩을 지나칠 때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짝거리는 유흥가를 지나칠 때면 2차를 가자며 서로 옷을 잡아끄는 주정뱅이 아저씨 모습도 보였다.

그러다가 도시를 빠져나와 다리를 지나고 피안의 세계에 다다른 듯 산을 천천히 넘어갈 때면 달빛에 비친 호수며 나무의 하얀 속살이 보이는 듯 했다. 아, 맞다. 산 위에 걸린 구름다리에서는 한 번씩 내려앉아 쉬곤 했다.

그 때의 생각들이 갑자기 물밀듯 다가왔다. 이제는 그런 꿈도 꾸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다. 이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이 사라진 탓일까? 하늘을 날아가는 능력이 나에게서 사라지다니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마지막 기획전으로 ‘和音- 새들이 노래하는 마을展’을 열고 있다. 박성은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가 자연과 인간과의 상생정신을 담아보고 싶었다”면서 “자연은 영속적으로 인류와 함께 지속해야 할 대상이며 그 생명력을 같이 할 운명을 갖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김동인 김해성 박선주 신철호 안윤모 왕열 이이남 최재영 정연태 등 9명의 작품이 자연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중 이이남의 ‘그곳에 가고 싶다’는 7분23초의 영상물이다. 동서양의 고전 명화를 차용하여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관객의 모습을 이끌어간다는 것에 재미가 있다. 특히 하얀 꽃잎이 하늘에서 뿌려지며 익숙한 산수화의 산봉우리를 지나칠 때마다 서양화에서 눈이 익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먹으로 그려진 산 등성이마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에 나오는 세 사람과 피리 부는 소년(여기서 풀밭위의 점심식사에서 옷을 다 벗은 누드의 여인이 피리 부는 소년과 같은 인물이다), 그리고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 마그리트의 대전쟁 등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꿈속에 다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이 작품을 보는 동안 차분한 음악과 함께 다시 성년이 되어 하늘을 날아가는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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