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다리’ 연재를 마치고
‘멀리 가는 다리’ 연재를 마치고
  • 윤영숙 기자
  • 승인 2011.11.11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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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다리밟기를 하며 건너던 다리

마음의 다리밟기를 하며 건너던 다리

다리라는 말에는 어떤 신비가 있다. 다리는 막힌 이 쪽 길 끝을 저 쪽으로 이어주고 멀리 있는 그리움들을 만나게 한다. 피안으로 건너가는 길, 그것이 다리다. 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길을 냈다.
그 길을 따라 사람은 저 멀리 가고 그 길이 끊어지면 강과 내를 건너 다리로 길을 이었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산과 언덕, 들판, 숲 같은 자연물을 거두면서 다리도 함께 거둔다.
세상의 모든 길은 밤마다 하늘로 올라가 깨끗이 몸을 씻은 뒤 다시 인간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 그 자리에 그대로 내려온다. 그때 다리도 함께 그 자리로 살짝 내려온다.
다리를 보면 그런 환상이 떠오른다.

함평 고막다리는 다리가 왜 자연물인가를 감동 깊게 보여준다.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지극한 소망으로 만들어진 탓일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근 칠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리는 그 자리에서 얼마나 숱한 사람들의 애환을 건네주었는지 모른다.
다리를 건너간 수많은 염원들을 다리는 기억하고 있다. 필시 죽은 사람의 혼도 그 다리로 건너갔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간 사람들은 어디로 갔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남도의 민중의 역사가 된 벌교의 소화다리, 벌교의 도맷다리, 진도의 남박다리, 광주의 배고픈다리, 대천의 한내돌다리…. 그리고 밟아보지 못한 수많은 우리나라의 다리들. 필자는 다리가 왜 사람의 다리와 같은 이름을 하고 있는지 늘 궁금했다.

그리고 다리를 취재다니면서 알 것 같았다. 사람의 다리가 움직이는 발이라면 건너는 다리는 고정된 발이다. 그러기에 옛날부터 사람들은 정월보름날밤 다리밟기를 하며 액을 멀리하기를 빌었다. 그것은 마을의 다리밟기가 곧 내 육신의 다리밟기였던 것이다.
내 몸의 다리를 밟으면 피가 잘 통하고 건강해지듯 마을의 다리를 밟으면 마을 공동체도 건강해질 것이라는 애틋한 믿음의 표현이었던 것이리라.

남도의 다리들은 하나같이 자연과 한 몸이 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인간이 만들지 않고 자연이 만든 것처럼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공물은 다 눈에 뜨이는데 우리네 다리들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그윽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거기 말없이 있다. 수수한 그 자태가 더욱 마음이 끌린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파리의 세느강 다리들은 인공미의 화려한 절정이라고 하지만 남도의 다리들은 자연화된 수굿한 인공미를 보여준다. 그런데 자연의 일부가 된 그 다리들이 일그러져가는 것이 참 안타깝다. 자연과 인간이 만나 전설이 된 다리들을 개축한다는 미명 아래 시멘트로 덧대어 다정한 옛모습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옛다리가 간직한 전설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과 추억과 역사를 간직하는 일이다. 때문에 옛다리를 없애고 새다리를 만들 때는 이런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짚어보고 만들어야 할 것이다.
송강 정철은 노래한다.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저 중아 게 있거라 너 가는 데 물어보자/막대로 흰 구름 가리키며 돌아 아니 보고 가노매라.”

다리 위를 건너 산문으로 가는 중처럼 필자도 다리 위를 건너 멀리 가고 싶다. 멀리 가는 다리 기획연재에 격려를 보내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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