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희망이다 9 - 색다른 크리스마스
사람이 희망이다 9 - 색다른 크리스마스
  • 문상기 대표이사
  • 승인 2011.11.0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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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하나되다

<이슬촌은>

<이슬촌은>

 

<이슬촌은>

 

<이슬촌은>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계량마을. 이슬촌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마을은 마을 단위로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축제를 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슬촌은 ‘산타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8년 째 이슬촌 녹색농촌마을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님 운영위원장(62)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녹색농촌체험마을을 선정한다는 공고를 보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기획안을 만들어 나주시를 통해 응모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체험마을 선정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공무원들이 기획안을 만들고, 주민들은 방관자가 되어 뒤따라가는 형태와는 달랐다.

68가구(농가 47호, 비농가 21호) 150여 명이 살고 있는 이슬촌은 1백여 년이 넘은 노안성당이 있고, 55년 전 노안성당에서 설립한 성골롬바로 중학교가 있어서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다.

전체 가구의 99%가 카톨릭 신자라는 점에서 이 마을이 갖고 있는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이슬촌은 구한말 시국이 혼란하고, 먹을 것이 부족했던 1894년에 계량대동계를 조직해 마을 주민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며 단합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러한 전통이 녹색농촌마을을 가꾸어가는 커다란 힘이 됐다고 김성님 위원장은 말했다.

<부녀회와 신앙공동체>
성공한 이슬촌 농촌체험마을이 있기까지는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93년부터 마을부녀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농촌여성 소득사업을 해왔다는 점이다. 친환경농산물을 가공해서, 노안성당을 매개로 전국의 성당을 통해 판매했다. 신부님들의 도움도 컸다. 지금도 노안성당에는 신자수가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세 분의 신부님과 두 분의 부제가 신앙생활은 물론 주민들의 농사일을 거들며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이슬촌체험마을 추진위원장인 김성님씨는 노안성당에서 운영하던 신협에서 근무하다 신협을 그만 둔 뒤로 오랫동안 마을 부녀회장을 맡았었다. 부녀회의 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둘째는 마을 주민이 대부분 카톨릭 신자라고 하는 신앙공동체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894년 천주교의 박해를 피해 이 마을로 들어온 정요한이 한약방을 운영하며 천주교를 전파하면서 신앙에 눈 뜬 주민들이 1900년 계량공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1908년 나주노안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노안성당에서는 1934년 신설학술강습원이라는 사설학교를 세워 주민교육을 시작했고, 1958년에는 성골롬바노 중학교를 세워 노안면 일대의 청소년 교육에 앞장섰다.

따라서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라는 신앙공동체와 학교 동문이라는 점이 마을의 단합과 단결에 커다란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친정으로 돌아온 김성님위원장>
이슬촌에서 김성님위원장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어머니를 수발해야만 했다. 아들이 없는 친정어머니에게 김위원장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아들이 김성님씨를 따라 함께 친정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친정어머니가 경작하던 농삿일을 하고, 김성님씨는 노안성당에서 운영하던 신협의 직원으로 취직했다.

신협에 근무할 때부터 부녀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김성님씨는 신협이 문을 닫자 본격적으로 부녀회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 때 시작했던 일이 바로 농촌여성들의 소득사업이었다. 93년부터 시작한 깻잎 절임 반찬은 깻잎 특산지인 노안면의 특성을 살린 좋은 상품이었지만 값싼 중국산 깻잎에 밀려 98년 중단하고 말았다.

농촌여성의 소득사업으로 추진했던 깻잎 절임 반찬이 값싼 중국산에 밀려 중단된 지 10여 년이 지나 친환경 농산물과 믿을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이슬촌에서는 다시 밑반찬 만들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주산물인 깻잎과 무청, 김치, 된장, 고추장 등을 생산하여 이슬촌의 깨끗하고 친환경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브랜드를 구상 중에 있다.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축제>
2004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었지만 방문객 수가 많지 않았다. 김성님위원장은 2007년 농촌마을 개발을 기획하는 한 업체의 자문을 받아 성탄절을 전후로 크리스마스 축제를 시작했다.

김위원장은 마을만의 특성을 잘 살려 대표상품을 통해 다른 농촌체험마을과 차별화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슬촌은 100년이 넘은 노안성당이 있고, 주민의 99%가 천주교 신자인 점에 착안해 주민모두가 동참하는 크리스마스 축제를 고안해낸 것이다.

소박하게 시작했던 축제가 2009년에는 축제기간에만 2만 5,000여명의 관광객이 마을을 찾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10년에는 구제역으로 인해 모든 준비를 마쳤던 축제를 취소했고, 올해부터는 화려하고, 성대한 축제보다 작고, 소박한 그러면서 주민과 내방객이 소통할 수 있는 축제로 열 계획이다.

김위원장은 “농촌체험마을이 수백 개에 이르기 때문에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해서는 시선을 끌기가 쉽지 않다”며 “마을 특성을 확실히 나타내는 대표상품을 만들어 특화해야 고객들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입소문도 빠르게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슬촌 크리스마스 축제가 성공하게 된 가장 큰 요소는 무엇보다 어린이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민들이 참여해서 만든 축제이기 때문이다.

<이슬촌이 꿈꾸는 미래>
김성님위원장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농촌에는 홀로 사는 노인들이 참 많다. 그 분들은 혼자 식사를 해야 하고, 끼니를 거르거나 반찬도 소홀하다. 그래서 마을에 무료 공동 식당을 만드는 것이 바람이다. 반찬 사업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금과 체험마을 이익금 일부를 공동 식당에 쓰고자 한다”고 말했다.

1백여년 전 계량대동계를 통해 마을 주민들이 상부상조했던 정신과 천주교 신자들로 구성되어 신앙공동체의 성격이 강한 이슬촌의 전통과 특성이 잘 나타난다.

이슬촌에는 성골롬바노 중학교가 폐교된 뒤로 폐교를 청소년 수련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수련관 옆에 6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건립했다. 또한 야외수영장·자연생태학습장·야영장·농산물판매장 등을 갖추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짓기 전에는 민박 중심의 가족단위 체험객이 많았지만 지금은 청소년 단체나 학교 등에서 찾아오는 체험객이 많아진 이유다. 이런 기반시설을 바탕으로 도농교류,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농촌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슬촌이 꿈꾸는 농촌이다.

 

 

   
<인터뷰>
이슬촌이 성공한 체험마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관주도의 체험마을 조성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먼저 기획하고 행정의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역량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요?

김성님 : 마을의 오랜 전통인 계량대동계와 카톨릭 신앙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민이 직접 주도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반목과 갈등이 생기기 쉽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의 회의를 통해 사업의 주요 내용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체험 위주의 마을이 아니라 마을기업(커뮤니티 비즈니스)을 세워 밑반찬 사업을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자본 등이 열악한 마을에서 마을기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김성님 : 마을 기업은 자본보다는 주민들의 정성과 신뢰받는 농산물의 생산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부녀회에서 깻잎 장아찌 담그기 사업을 했던 경험이 있고, 대부분 마을에서 생산하는 친환경농산물을 이용하여 가공하는 식품이기 때문에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믿습니다.

내방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체험 내용은 마을에서 개발하고 있는가요? 아니면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고 계신가요?

김성님 : 처음 크리스마스 축제를 기획할 때는 컨설팅회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봄·여름·가을·겨울별로 아이들 흥미에 맞춰 농사·생태·요리·민속놀이 등 100여 가지가 넘는 체험거리를 우리의 실정과 환경에 맞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체험마을이 성공하기 위해 행정기관과 주민이 어떤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가요?

김성님 :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을 받기 위한 체험마을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체험마을, 마을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체험마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이 주체가 되고, 행정은 보조역할에 머물러야 합니다. 행정에서 개입하는 순간 성공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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