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표준어 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 문틈 시인
  • 승인 2011.09.2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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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립국어원이 ‘짜장면’을 표준어로 선정하자 그날 전국의 중국집에서 짜장면이 동나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자장면을 표준어로 해온 탓에 짜장면을 먹고도 길 잘못 든 사람처럼 늘 뻘쭘했었다.
‘짜장면’이라는 말을 뒤늦게 표준어로 선포하자 사람들이 반긴 것이다. 문제는 짜장면 같은 말들이 수천 수만이라는 것. 이 같은 잘못된 표준어 정책 때문에 수백년 수천년 조상 대대로 써온 고향의 말들이 사투리라는 이름으로 쫓겨나 용도 폐기되고 있다.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배웠던 말들이 마치 시골에서나 쓰는 촌스런 말, 못배운 사람이나 쓰는 무식한 말로 치부되어 이제는 고향에서마저 홀대를 당하고 있다. 서울말들은 표준어이고, 다른 지역의 말들은 사투리로 내모는 이런 폭력적인 어문정책에 짓밟혀 고향의 말들은 하나 둘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투리라고 내치는 지역어는 실상 그 지방의 내력과 습속과 역사가 만들어낸 그 지역의 자랑스런 문화어요, 태생을 지켜주는 생명어다. 그 말을 잃으면, 그 말을 쓰지 못하게 하면, 우리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오메, 단풍들겄네”하고 저기 강진의 김영랑 시인은 노래한다. 이 싯귀를 “어머, 단풍들겠네”라고 이른바 표준어로 고쳐서 말하면 시인이 처음 노래한 그 정감, 그 감흥, 그 절절함은 사라져 버리고 표준어의 건조한 껍데기만 남는다.
“마실 나갔다가 얼척 없는 일을 당했소 잉” “마치 맞게 왔구만이라”하고 전라도 ‘사투리’로 말했을 때 도무지 그 사투리가 아니면 이 깊은 속, 이 정겨움을 다 전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역말을 무시하고 서울말 위주로 표준어를 정한다면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1933년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모여서 표준어를 선정할 때 그 모임의 과반수를 훨씬 넘는 서울, 경기 출신 회원들이 이 작업을 주도했는데 그때 지역어를 무시한 이래 지금까지 고향말은 방언으로 내쫓긴 신세다.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 말을 쓰고, 경상도 사람이 경상도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전라도 땅에 태어나 전라도 사람으로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닐진대 무에 지역어가 부끄럽고 촌스럽고 할 것인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말이 어릴 적부터 고향과 어머니로부터 배운 그 말인데 말이다. 전라도 말이 없으면 전라도도 없다. 말씨만 듣고도 어디 사람임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향기만 맡고도 어떤 꽃인지 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김대중 전대통령 말마따나 ‘메뚜기 이마빡만한’ 나라에서, 각 지역의 말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할 형편도 아닌 데 표준어를 내세워 지역어를 말살시키는 것이 과연 온당한 언어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어생활을 제약하는 표준어 제도를 폐지하든지, 아니면 수많은 아름답고 정겨운 지역어들을 표준어로 인정하여 우리말을 풍부하게 해야 할 것이다. 지역 사람들이 자기가 쓰는 말을 창피하게 여겨 자기 말을 폄하하게 해서는 안된다.

‘사투리’도 표준어로 받아들여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존엄을 지켜주어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어떤 지역 사람들이 ‘우뢰’라는 말을 잘 말하지 못한다 하여 ‘우레’라는 표준어를 새로 만들고, ‘의자’를 ‘이자’로 발음해도 표준어로 인정한 언어정책이 왜 ‘마실’ 같은 말을 사투리로 내치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아니 무슨 권한으로 지역 사람들의 혼이 깃든 말들을 사투리라고 내쳐 조상 대대로 써온 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가. 누가 그런 권리를 그들에게 주었는가.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눈물을 흘리며 자기 고향 북한말을 털어내고 애써 서울말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고향말을 버리고 살 바에야 차라리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모든 고향의 말들에게 말의 권리를 돌려주라. 통일을 말하면서 지역말들을 내쫓아내는 바보같은 짓은 이제 참말로 그만 두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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