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왜 절대권력자의 딸을 사랑하는가
아시아는 왜 절대권력자의 딸을 사랑하는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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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영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 유선영 연구위원
영화전문 주간지에 칼럼을 쓰고 있는 어느 여성이 그랬다고 들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 자신은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찍겠다고.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자문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지난 5월 10일경 일간지에 정몽준, 박근혜 두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창당설이 보도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미 차기 대권을 향한 독자행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지지기반은 대구·영남권 그리고 박정희시대 향수를 가진 보수계층이다.

박근혜 부총재도 그 딸들의 대열에 서있다

아시아엔 요즘 박정희 전대통령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절대권력자의 딸들이 하나같이 정치무대에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선 전 다나까 가꾸에이 총리의 딸인 다나카 마끼꼬 외무성 장관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여성총리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필리핀에선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전대통령의 딸인 아로요가 지난 1월 ‘피플파워’에 의해 대통령직에 올랐고 올 5월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는 알리 부토 전 총리의 장녀로 1993~1996년에 걸쳐 두 차례나 총리를 지냈다. 인도네시아에선 건국의 아버지이자 독재자였던 수카르노의 딸인 메가와티 수카르노 부통령이 국민의 인기를 발판으로 다시 대권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박근혜 부총재도 그 딸들의 대열에 서있다.

왜 아시아는 절대권력자의 딸들을 사랑하는가?

아시아에서 딸들이 아들들보다 쉽게 아버지의 후광으로 권좌에 오르는 것은 아주 지독한 남근중심주의가 일상의 켜켜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여성마저 최고 권좌에 올릴 수 있는 괴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여성을 개별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독하다. 딸은, 여성은 한 인간으로서의 독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권력자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남성성의 화신이었던 아버지의 전설을 상기시키는 ‘아버지의 딸’로 남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권력자의 신화와 전설이 아버지에게 종속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딸들을 통해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의 대권도전은 가부장적 질서 재생산

하지만 아들은, 남성은 애초부터 독립된 개별자이기에 아버지의 아들로만 남을 수 없다. 아들은 그 자신의 욕망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외디푸스처럼 아버지를 딛고 한 사람의 남자가 되려 한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딸들과 달리 그들의 야심을 부단히 의심받고 비난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DJ의 장남 김홍일 의원 그리고 YS의 차남 김현철은 그러한 아들에 대한 반감과 의심때문에 ‘비선’에서 활약했다. 딸들처럼 전면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의 대권도전은 그래서 너무도 가부장적이고 지독히도 남근주의적인 질서를 교묘히 재생산하는, 그러면서 이 땅의 여성들과 일부 페미니스트들을 잠시 혼돈에 빠뜨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이 땅의 한다하는 여성들이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 멀지도 않은 역사에 대한 성찰을 놓아버리는 일이다. 그녀는 요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및 추모사업에 앞장서면서 자신을 해바라기하는 거물 정치인들을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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