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찾아서(3)
민주주의를 찾아서(3)
  • 이홍길 광주민주동지회회장
  • 승인 2011.09.0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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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에 사는 우리들이 왜 새삼스럽게 민주주의를 운운하게 되는가를 자문해 본다.

억압과 착취의 지난 반세기에 길들여진 공포가, 짝퉁 자유언론들의 무한질주를 보면서 보도자료들로 짜집기 되었던 지난 유신‧계엄시절의 언론을 쉽게 상기시키는가 싶다. 억압 속에 만들어진 언론도 문제이지만 거짓을 진실로 도장하는 짝퉁 언론들도 문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실을 왜곡하여 진실을 호도한다. 최근 출간한 노태우의 회고록에 “ 5‧18운동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라는 기막힌 논법이 있다.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했다”고 가당찮은 주장을 하면서 그 사이에 온 시내를 낭자하게 했던 공수단들의 잔혹행위는 구미호 꼬리 감추듯 은폐하고 있다.

5‧17 계엄확대에 대해서도 “서울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치안유지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후안무치한 강변을 토해내고 있다.

80년 서울의 봄을 유린한 저들의 처사를 “서울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니, 노태우를 사면한 전직 대통령이 원망스럽다.

원흉들이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 마당에 그 아첨배들이 작당하여 “북한군인들이 내려와서 편싸움한 것”이라고 거짓 시나리오로 국민을 기만한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일찍이 중국의 대문호 노신은 웅덩이에 빠진 미친개를 가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몽둥이를 뚜드러 잡아야 한다고 자비의 감상에 쉽게 빠지는 그의 동포들을 질책하였다.

웅덩이에서 살아나온 미친개는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었다. 사면 이후의 노후를 보내는 노태우의 행태와 노신의 미친개가 어떻게 다른가를 불민한 필자는 헤아릴 길이 없고, 그냥 서럽고 5월 영령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뻔한 진상도 규명 못하고 기백 기천의 사람이 살상 당하였어도 그 책임자가 법적으로 아리송하다니,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독창으로 합창으로, 자정의 달을 보면서 이리떼처럼 울부짖으면 속들이 좀 가라앉을까?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고 방아타령을 권장 받았으니, “쿵더쿵 쿵더쿵 얼쑤 인군을 잘만난 대한민국 호시절이로세”. 역시 찬가는 우리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권장가는 밤낮가릴 것 없이 듣기 좋았다.

역사에는 우리 인간들이 예견하고 예단할 수 없는 우여곡절들이 적지않다. 어떤 권력자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대학교 정원을 대폭 늘렸는데, 그 늘어난 대학생들이 권력자를 권좌에서 몰아낸 사실들을 우리들은 현대사에서도 감지하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한다.

1966년 모택동은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모택동사상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혁명을 강행하였다. 모택동의 혁명수단은 홍위병이라는 학생들과 그가 지식인들과 다른 지도자들에 대항하도록 조직한 노동자들이었다.

이후 10년동안 1억이 넘는 중국인들의 삶이 탄압, 구금, 그리고 고문으로 얼룩져, 문화대혁명은 현대사의 대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학생 노동자들은 76년의 1차 천안문 사태를 통해서 사인방과 문혁 잔여세력을 극복하고 등소평의 개혁 개방시대의 문을 열었다.

1989년에는 6‧4투쟁을 통하여 2차 천안문 사태를 일으켜 세계사적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의 찬연한 한 페이지를 장식, 미래의 중국 민주화의 가능성을 천하에 공람시켰다.

무엇이 이러한 운동을 가능케 하였을까? 거슬러 1919년의 5‧4운동의 전통을 상기할 수도 있지만 문화대혁명의 홍위병운동에서 그 가까운 동력을 찾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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