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시청자위원 자진사퇴
광주MBC시청자위원 자진사퇴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1.08.19 2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MBC의 해묵은 문제점 성찰하길 촉구
광주MBC의 각성을 촉구하는 성명서가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광주MBC시청자위원 3명이 20일 자진사퇴를 발표해 파장이 일고 있다.

광주MBC에서 해고된 9명의 여성 작가들에 대한 일방적인 집단해고 철회 및 소통창구 마련을 요구하는 성명서가 민주당, 진보신당, 전교조, KBS·MBC·SBS·EBS구성작가협의회 등에 의해 이미 발표된데 이어 20일 광주MBC시청자위원 3명마저 광주MBC의 해묵은 문제점 성찰하길 촉구하며 자진사퇴를 발표했다.

광주MBC시청자위원은 총 15명으로 이 중 3명이 이날 사퇴를 했다.

이날 사퇴를 선언한 광주MBC시청자위원 3명은 성명을 통해 “광주MBC 구성작가 집단해고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도록 회사 측에 촉구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고, 온전한 지역방송을 지켜내는 역할을 해내지도 못했다”며 “광주MBC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대로 놔둔 채 개별 프로그램의 자잘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와 지역사회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들 위원들은 “광주MBC 전 구성원들에게 9명의 구성작가들이 집단행동까지 불사하며 가리키는 방송국의 해묵은 문제점을 뼈아프게 성찰하길 촉구하며 시청자위원직을 자진 사퇴한다”고 밝혔다.

광주MBC가 이 문제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광주MBC를 규탄하는 행동들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성명서 전문>
묵은 관행과 부조리에 대한 불감증에서 벗어나길…
-광주MBC시청자위원직을 사퇴하며-

광주MBC 구성작가 9명이 “집단해고 철회”를 외치는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요즘 가뜩이나 노동차별과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가 먹구름처럼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던 터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주장이 결코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광주라는 도시에서, 그것도 방송국에서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뜨거운 불씨처럼 품고 엄혹한 세월 꿋꿋하게 버텨온 ‘오월의 도시 광주’에 대한 배반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생업이라는 엄중한 삶의 조건을 건 작가들의 집단행동, 방송국 안에서 명백한 약자들의 절박한 외침은 당장 연민과 공분을 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광주MBC의 조직문화와 구성원들의 양식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위계와 맹종보다는 자율과 민주적 풍토에서 저마다의 창의적 역량이 존중되는 언론사, ‘인간의 존엄’을 보편적 가치이자 지켜야할 사명으로 삼는 방송인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시청자위원이라는 자격으로 회사와 작가들 사이에서 원만한 중재를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평지풍파는 너무도 유치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로 불거졌기에 비록 미봉에 불과할지언정 우선은 서둘러 바깥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수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들의 이탈이 가져올 방송의 파행과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 시청자와 지역사회에 미칠 파장을 심각하게 감안하리라 짐작했습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시청자위원의 자격으로 이번 사안에 대한 논의를 갖게 되었고 나름 중재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입니다. 회사와 일부 위원들은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에게 돌아갈 피해가 예견되는 상황을 모른 체 하는 것이야말로 시청자위원에게 부여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경영진과 작가들은 한 지붕을 이고 방송을 함께해 온 동료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인식의 차이가 컸습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집단해고’라는 주장과 ‘고용계약서도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프리랜서들에 대한 처우로 부당함이 없었다’는 대립에는 추호의 타협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해고니, 아니니” 하는 팽팽한 형식논리의 충돌에 휘말려 벌이는 어지러운 말싸움은 이번 일의 본질을 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사실관계와 양측이 내놓은 경위서, 성명서, 그리고 대화를 통해 이번 사태의 근원은 광주MBC안에 상존하는 전근대적 노동관과 인권의식, 약자에 대한 차별 등 묵은 관행과 부조리에 대한 불감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첫째, 일부 간부직원들은 스스로의 고압적 태도와 언행이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폭력이며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근무여건이 더 나빠진 작가들의 항변에 “싫으면 나가라”는 식의 답변을 너무도 쉽게 해버리는 조직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프리랜서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말을 마치 회사와 작가는 동등한 계약관계인 것으로 설명하면서도, 그것은 누가 보아도 약자인 작가들에게는 걸핏하면 나가라며 생업을 위협했다는 인권침해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마치 프리랜서는 함부로 해도 되는 인간 이하의 존재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인간’과 ‘노동’에 대한 예의가 실종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인간적인 방송’을 기대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둘째, 여성작가들에 대한 “취중폭언은 업무의 연장으로 보아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궤변에 경악했습니다. 21세기 개명천지에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술에 취해 저지른 타인에 대한 횡포를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문명사회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울러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빈번했지만 참아야했다는 작가들의 처지에 동정심이 일면서도, 그들 역시 가까운 부조리에 침묵해온 세월에 대한 아픈 자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과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사원 그 누구에게도 이런 모욕적인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비정규직 여성 작가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인권침해이자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취중폭언의 가해자가 근신처분을 받았는데, 그 피해자에게 해고통지를 한 것은 누가보아도 형평에 어긋납니다. 술에 취해 그만두라는 막말을 한 가해자가 징계를 받았다는 건 회사가 그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잘못된 행위로 피해를 입은 작가의 생업을 박탈하는 처사가 온당한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또 작가집단 공동의 의사표현에 대해 내용과 경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 사람을 주동자로 몰고, ‘최소한의 책임’을 물어 ‘그만두라’고 통보했다는 것은, 광주MBC가 작가들의 생계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방증합니다. 15년 이상 방송에 종사하면서 안팎에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는 베테랑 작가의 생사여탈권이 술 취한 부장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고, 담당국장이 해고를 철회한 지 며칠 만에 다시 나가라고 내쫓는 방송국이 참으로 부끄럽고 우려스럽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이런 행태는 언제든지 또 다른 약자에게 굴종을 요구하는 무자비한 비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광주MBC를 애정으로 지켜봐온 시청자위원들로서 이번 일이 원만히 해결되도록 회사 측에 촉구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온전한 지역방송을 지켜내는 역할을 해내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의 눈에 비친 광주MBC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대로 놔둔 채 개별 프로그램의 자잘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와 지역사회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 세 사람은 광주MBC 전 구성원들에게 9명의 구성작가들이 집단행동까지 불사하며 가리키는 방송국의 해묵은 문제점을 뼈아프게 성찰하길 촉구하며 시청자위원직을 자진 사퇴합니다. 작가들의 행위가 불러온 회사의 피해만을 부풀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의 조직이기적인 진영논리를 펴는 행위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탓하는 어리석음이며, 방송국의 발전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광주MBC가 하루빨리 작가들을 전원 복귀시키고 활기를 되찾아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 광주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가는 방송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아울러 그동안 함께 해주신 김만우 위원장님을 비롯한 시청자위원님들께 양해의 말씀을 올립니다.

2011년 8월20일

광주MBC시청자위원 남궁협, 박선희, 황풍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