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평화는 평화로써 지켜져야 한다’
[강정마을]‘평화는 평화로써 지켜져야 한다’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1.08.19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을 찾아서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찬반갈등으로 인해 마을공동체가 산산조각이 난 제주도 남단 강정마을엔 폭풍전야와도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서울 및 경기지방경찰청 기동대 소속 전경 600여명과 물대포차 3대, 최루탄발사기가 장착된 시위진압차량 10대 등이 지난 14일 오후 여객선을 이용해 제주로 들어와 강정마을과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안덕면에 머물고 있었다.

1948년 제주도 4.3항쟁 이후 가장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강정마을을 취재하러 가는 길 위로 우울한 빗방울이 내린다.

강정마을에 가까워지면서 온몸에 전율이 감돈다. 곳곳에 걸려있는 ‘해군기지 반대’ 현수막이 절규를 하고 있다. 찬성하는 현수막은 찾아보기 힘들다.

1900명의 강정마을 주민 중 약 80%가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영원히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군이 상시 이용 가능한 해군기지는 평화의 섬 제주와 절대 양립할 수도, 양립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해군기지가 있으므로 해서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중국과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고, 이것이 제주도를 전쟁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농성장입구에 들어서니 전경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 조우한 충격적인 장면. 농성장에는 온몸에 쇠사슬을 걸치고, 그것도 모자라 자물쇠를 채우고 5명의 여인들이 앉아 있다. 현직 도의원과 진보연대 회원들이란다. 인사를 건네는 우리 일행을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오랜 농성으로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쳤을 법도 한데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다. 올바른 가치를 행동으로 옮길 때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강정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들을 모습에서 이들의 염원이 진정임을 알 수 있었다.

농성장을 뒤로 하고 10여개의 크고 작은 텐트를 지나 해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인 중덕해안가로 향했다. 중덕의 해안가에 이르니 800여 미터에 이르는 구럼비바위가 펼쳐져 있다. 단일 용암바위다. 이곳에서는 용천수가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파헤쳐진다는데 그러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바위다. 절대보존지역인 이곳엔 보호해야할 자원들도 많다. 멸종위기종인 붉은발 말똥게, 연산호 등 희귀생물들이 많이 서식한다.

그래서 현재 강정마을은 비상계엄령과도 같은 상태지만 강정주민들은 생명에 대한 가치와 평화를 위해 끝까지 이 구럼비를 지켜나가겠다고 말한다. 또 이들은 평화는 평화로써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럼비바위를 앞에 두고 또 하나의 천막이 있었는데 이 천막에서 마침 해군기지반대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곳에서 강정을 지키고 있는 문정현 신부를 볼 수 있었다. 문정현 신부는 이날 미사에서 “구럼비를 바라보면 자꾸 눈물이 나온다”며 “신자들과 함께 평화의 섬을 지키기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제주 올레길 7코스에 위치한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강정마을. 이곳을 가본 올레꾼이라면 누구나 칭찬을 아끼지 않는 마을. 이곳을 뒤로하고 떠나는 마음이 무겁다. 알 수없는 부채의식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들의 값진 희생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