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기만 한 올 가을
무섭기만 한 올 가을
  • 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 승인 2011.08.12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평생 이번 같은 비는 처음이다”이거나,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비바람은 처음”이라는 등 폭풍, 태풍, 집중호우와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면 반복되는 지루한 (인용)보도형태가 올해도 예외없이 방송을 탔다. 인터뷰 화면에 나타난 사람은 주로 늙수구레한 중노인으로, 자막으로 처리된 대사 속에 드러난 나이는 불과 칠십몇세로 밝혀진다. 심지어 오륙십대도 있을 지경이다. 팔십대 이후 노인부터는 인터뷰 화면에 잡기가 쉽진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형식은 너무도 식상해서 귓가가 물러터질 정도라 해도 별 이의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도 이른바 인용보도는 언론매체에서 현장감을 살린다는 명분 때문에 쉽게 퇴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겸허한 인간의 자세를 가져본다면, 불과 한평생밖에 살아본 적이 없는 한 평범한 사람이 지구(혹은 우주적) 자연재해를 증언해 낸다는게 우습기만 할 따름이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거창하게 지구의 역사까지는 갈 필요가 없다손 치더라도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지 불과 얼마이며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를 기록한지가 얼마나 된다고 굳이 다수가 보는 방송화면에 나타나 “이런 일은 처음…"운운은 가소롭지 않는가 싶다. 그러나 ― 그럼에도 올 여름은 심하다.

자연의 변화를 바로 코앞에 두고 사는 이들은 올 여름이 무섭기만 한 느낌을 갖고 있다. 우선 가장 피부에 닿는게 농작물 형편이다. 여름 채마밭처럼 풍요로운게 어디 있을까만 올해는 아니다. 텃밭에 가장 손쉽게 가꾸는 상추가 장맛비에 다 녹았고 열무, 여름배추는 흔적도 없다. 굳이 심지 않아도 여기저기 솟아나는 들깻잎도 몇포기 보이지 않는다. 물만 잘 빠지면 성글성글 맺혀 하룻밤 자고 나면 팔뚝만큼 커지는 오이도 어디 갔는지 모두 사라졌다. 텃밭을 건너 묵을 밭일망정 가꿔놓으면 조금은 목돈 노릇을 해주던 고추는 지난 무이파 비바람에 풍성하기만 하던 잎사귀가 다 떨어져 나가고, 초겨울 미처 거두지 않고 남겨둔 잔챙이보다 더 못하게 허접한 몰골만 남았다. 더 이상 풋고추 수확은 없으려니와 붉은 고추도 김장감마저 포기하게 생겨먹었다. 늦봄 마늘을 수확한 뒤 뿌려놓은 황토밭엔 메주용 콩포기들만 손뼘만큼이나 자라 힘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저 멀리 보길도 전복양식장이 뒤집혀 앙상한 양식장 뼈대들만 남아 해변에 밀려든다는 지역뉴스가 을씨년스럽게 전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가 멀다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시골 오일장에서 백숙용 닭 한 마리가 작년보다 사오천원은 오른 값에 거래된다. 거의 30%는 올랐다. 전남 남해안 특산품이나 다름없는 전복이 10미(마리) 1kg당 6만5천원으로 올랐다. 일본 수출이 활발해진 지난해부터 꾸준히 오름세더니 올 여름 휴가철 특수가 겹쳐 오자 kg당 5만원에서 1만5천원 즉, 30%포인트 상승률을 보인 것이다. 물가 상승률이 이 정도면 살인적이라고 한다.

안정된 사회는 물가가 한자리수만 올라도 거의 난리 수준으로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얼마나 단련되었는지, 아니면 감각을 상실했는지 이상 물가급등에도 동요가 보이지 않는다. 혹은 소통을 담당하는 매체에 이어 시민들마저도 이미 그 (반사)기능을 거세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손바닥보다 더 보잘것 없는 텃밭이건만 초봄부터 소꿉차림처럼 자라던 상추며 열무, 고추, 오이, 호박, 토마토, 가지가 잎사귀는 다 훑어 없어지고 이제 시들거리며 오늘 내일 하는 가지들을 쳐내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며 들여다보는 마음이 힘겹기만 하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