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인간의 원초적 욕망
향수, 인간의 원초적 욕망
  • 이재의
  • 승인 2011.08.1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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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은 식물성 천연향료 재배지 잠재력 가져

향료산업<1>
향수, 인간의 원초적 욕망 드러내
전남은 식물성 천연향료 재배지 잠재력 가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본능이다. 향기는 무슨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 후각은 인간의 감각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민감하다. 향기에 대한 느낌은 매우 내밀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워낙 편차가 커서 객관화시키기 힘든 탐미적 영역으로 남아있다.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향수’는 향기에 탐닉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다양한 칼라로 드러낸다. 최상의 향기를 얻기 위해 참혹한 ‘살인’을 대비시킨다. 여인의 매혹적인 체취를 취하기 위해 서슴없이 여인을 죽인다. 향에 대한 집착은 도덕적 참회나 죄책감 따위와 상관없다. 흙탕물에서 꽃을 피워내는 연꽃의 역설이 떠오른다.
향수의 역사는 인류가 맨 처음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대략 기원전 5천년전으로 추정되는데 구약성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고대 인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향료를 사용했다. 이집트인들은 종교의식 때 많은 양의 향수를 아낌없이 뿌렸다. 피라미드 바위 벽면에는 향료 항아리를 든 여인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도 제례나 불교 사찰의 향불 등 주로 종교의식에서 오랫동안 향이 사용됐다. 향수를 뜻하는 영어 'perfume'의 어원은 ‘연기를 통하여’라는 뜻이라고 한다. 향연을 통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이 나타난 것이다. 이무렵까지만 해도 향은 오로지 신을 경배하기 위한, 신에게만 바쳐지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신산업 가능성 가진 향료산업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신의 영역을 넘보며 자신을 확장해왔다. 클레오파트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냄새의 향수를 사용했다. 목욕문화가 발달한 로마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목욕 후 신체 부위별로 서로 다른 향수를 발랐다.
특히 네로 황제는 사랑하던 여인이 죽자 당시 중동에서 10년간 생산 분량의 향료를 단 하루 만에 사용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 무렵에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도 자신이 죽을 경우를 대비하여 향료를 뿌렸다고 한다.
욕망은 산업을 창출한다. 향은 인간 욕망의 가장 예민한 분야에 닿아있다. ‘감성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요즘 ‘향료산업’은 신산업의 가능성 때문에 주목받는다. 전남은 식물성 천연향료 재배지로서 잠재력이 크다.
특히 요즘 합성향료에 싫증이 난 소비자들이 천연향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화장품 뿐 아니라 식품분야에서도 천연향이 대세다. 천연향은 합성향과 달리 자연에서 채취할 수밖에 없다. 사향 등 극히 일부 동물성 향이 있긴 하지만 천연향의 대부분은 다양한 식물에서 추출한다.
역사적으로 향료가 산업적 의미를 갖게 되는 계기는 향의 수요자가 귀족에서 대중으로 넓혀지면서부터다. 대량으로 향료를 소비하는 세력이 생겨났기 때문에 생산과 가공, 유통산업이 자연스레 발달했던 것이다. 독특한 향의 원료가 되는 꽃과 식물은 동양에 많았다.
동서양의 교역로 지중해에 위치한 베니스는 13세기 초반 유럽 경제의 중심지였다. 당시 베니스에서 가장 인기 높았던 상품이 동양의 향료와 비단, 자수품이었다는 사실에서 향료산업의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중세 연금술사들이 발명한 알코올은 향료를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기술적 진보였다.

 

 


▲향료의 대중화 확산

천연향료의 집산지로 알려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그라스(Grass)라는 작은 도시는 지중해 연안의 따뜻한 기후 때문에 장미, 라벤더 등 주요한 향료식물이 잘 자란다. 이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꽃에서 향을 추출하는 자그마한 기계들을 들여놓고 가내수공업 형태로 천연향료산업을 발전시켜왔다. 오늘날까지도 그라스는 여전히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을 대표하는 향료산업의 중심무대다.
하지만 향료산업이 본격화 된 것은 1834년 니트로벤졸로 최초의 합성향료 개발에 성공하면서부터다. 천연향료의 원료가 되는 식물 재배는 기후나 환경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수확량이 적을 때는 가격도 폭등했고, 저장도 용이하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천연원료와 똑같은 분자식을 갖거나 천연원료에는 없는 새로운 성분을 섞어서 합성향료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합성향의 장점은 많았다.
천연향료에서 찾을 수 없는 매혹적인 향을 만들 수 있어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날씨 등 자연조건에도 별로 영향 받지 않았기 때문에 대량생산과 공급이 가능해져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소득수준이 낮은 일반인조차도 향료소비자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천연향과 달리 표준화된 품질관리도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경영의 안정성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한마디로 합성향료 시장이 열리면서 향료산업은 가내수공업 수준을 벗어나 규모를 갖춘 안정된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향료시장은 3천여 종에 달하는 합성향료가 80~90% 정도로 주종을 이룬다. 나머지 10~20%가 천연향료인 데 1천5백여 종의 식물성 향료와 극소수의 동물성 향료 등이 차지하고 있다.

▲환경오염 이후 천연향료 관심 높아

세계향료시장의 규모는 220억달러 한화 25조원이 넘는데 최근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이 가운데 세계 주요 10대 기업의 향료시장 점유율이 무려 76%에 이를 만큼 과점현상이 심하다.
우리나라는 연간 약 3천억~3천5백억원 정도가 소비되는데 향료소재의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형편이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우리나라 향료산업이 낙후된 것은 향료소재 생산기술이 정밀화학 분야의 첨단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긴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 가장 큰 약점은 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소재와 부품산업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바이오 소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향료소재 역시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료합성향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소비자들로부터 천연향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급격한 환경오염과 더불어 화학물질의 부작용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천연향료 역시 상대적으로 더 안전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첨가제로 사용되는 향료의 안전성에 대한 기준과 법규는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엄격한 편이다.
향료 또는 향기성분을 아로마(aroma)라고 하는데 용도에 따라 향장품향료(fragrance)와 식품향료(flavor)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분야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표현할 적절한 낱말이 없다. 서양과 달리 동양권에서는 그냥 향료라고 두루뭉실하게 사용해왔다. 향료산업의 개념이 포괄하는 범위는 과거보다 훨씬 넓다.
전자는 주로 화장품, 세제, 방향제 등 생활용품에 사용되고 코의 후각을 통해 냄새를 취한다. 향수, 크림 로션 파운데이션 등 화장품, 모발용 헤어스프레이, 비누 샴푸 바디클렌저, 빨래용 분말세제, 방향제 살충제 고압가스 등 생활용품에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향을 포함한다.

 



▲전남만의 맛과 미각 차별화

이에 반해 후자, 즉 식품향료는 맛(미각)과 냄새(후각)라는 두 개의 감각과 관련이 있고, 식품첨가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법적 규제가 까다로우며 ‘식향’으로도 불려진다. 제과 음료 유제품 육류가공품 조미료, 담배나 껌 등 기호식품, 치약 시럽 애완동물사료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우리생활 곳곳에, 감성이 필요한 영역이라면 빼놓지 않고 스며들어 있는 게 향이다.
전남은 다양한 조미료의 풍부한 맛을 바탕으로 음식문화를 발달시켜왔다. 전라도 사람들의 입맛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음식의 미세한 맛과 향의 예민한 차이를 타 지역 사람들보다 쉽게 구분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런 자질은 수세기에 걸쳐 농업지역이라는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갖는 특징일지 모른다. 이는 곧 전라도사람들의 미각세포에 섬세한 맛과 향을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유전자가 형성돼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특정한 자연환경에서 오랜 기간 살다보면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특정 유전자가 후천적으로 형성돼 유전되는 경우가 많다. 다윈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nature selection)’ 혹은 ‘자연도태설’이나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후성유전학’에 비춰볼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다.
어찌됐든 전라도 사람들의 맛에 대한 타고난 자질과 감각은 향료산업 발전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식물에 대한 재배기술 역시 다양하게 축적돼 있는 지역이다.
더군다나 최근 전남은 낙후된 농업을 혁신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추진 중이다.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특용작물을 단순 출하할 게 아니라 바이오 생명공학기술을 접목시켜 고부가가치형 식품 및 향장품 소재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향료는 생물소재산업의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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