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전문가 대담 7. 맺는 이야기
길 - 전문가 대담 7. 맺는 이야기
  • 편수민 기자
  • 승인 2011.07.28 0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 위에 만들어진 길, 그 뒤안길

길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그리고 역사를 만난다. 길은 어떤 길로 가느냐에 따라 종착점이 크게 달라진다. 최근 길은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걷는 사람들의 중심으로 다가오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필두로 전국으로 '길 문화'가 확산됐다. 본지는 이러한 길에 대한 재조명과 개발가능성, 문제점 등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 신정일 (사)우리땅 걷기모임 대표
-2009년~현재 문화관광체육부 문화생태탐방로 선정/평가 위원
-2009년 <백두대간 산촌 마실길 도보답사>코스 제안,
<한국의 5대강 도보답사>코스 선정에 참여
-2010년 대통령 표창 <도보여행의 대중화와 국내관광 활성화에 기여>
-저서: <2001_섬진강 따라 걷기>,<2008_삼남대로>,<2010_느리게 걷는 사람> 외 다수

■ 윤정준 (사)한국의 길과 문화 이사
-전라남도 대표 탐방로 선정 위원 활동 중
-2009년~현재 문화관광체육부 문화생태탐방로 선정/평가 위원
-前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
-2007년~2009년 (사)숲길의 이사 (지리산둘레길 조성 프로젝트 기획 총괄


   

제주 올레길을 시발로 전국적인 도보 열풍으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다양한 여행길을 앞 다투어 만들고 있다. 여행객들은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자연의 향취를 마음껏 느끼는가 하면 지자체는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그동안 취재진은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모두 7개의 여행길을 직접 답사하고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전국적으로 더 많은 여행길이 있지만 대부분 유사한 형태라는 점에서 투자한 비용에 비해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두었는지 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여행길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고 현재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모색해본다. 이를 위해 지난 25일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모임 대표와 윤정준 (사)한국의 길과 문화의 이사를 초청해 좌담회를 가졌다.

▲최근 도보여행 열풍이 거세다. 이에 대한 견해는?

신정일 (사)우리땅 걷기모임 대표

-신정일 대표: 요즘 사람들은 너무 빠름에 길들여 지지 않았나 싶다. 조선시대 때 9개의 대로가 있었다. 이 중 하나인 해남-서울을 잇던 삼남대로 길을 걷다가 경기도 의왕시의 오전초등학교 근처에서 길을 잃었다.
그 지역의 한 시내버스 기사에게 길을 묻자 “그렇게 먼 거리를 걸어서 갑니까”라고 되물었다. 그에게 얼마나 먼 거리인지 물었다. 그는 “여기서 시내버스 두 정거장 거리나 된다”고 대답했다. 이렇듯 시내버스 두 정거장 거리도 멀다고 여기는 것이 현대인이다.

차를 타고 걷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이 차를 타고 빠름에 길들여져 건강을 잃고 사는 것이다. 이제는 망각하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걷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듯하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걷게 만드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도보열풍을 일으켰다.



-윤정준 이사: 이제 걷기는 물건을 팔기 위해 이동하는 등의 실용적 수단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주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한 지점까지 차로 이동하고 도착해서 그 공간 안에서 즐기고 향유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 지점까지 걸어가며 여행하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시대가 됐다.

산업화 이후에 도시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면서 일상은 쉴 새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사람들은 지치고 피로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공간에 홀연히 나와서 자신을 충전하려는 욕망을 갖게 됐고 이것이 걷기열풍으로 이어졌다.

국민들의 평균소득도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삶의 질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차를 타고 여행하는 대중관광에서 걸어서 여행하는 개별관광으로 시대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현재 여행길이 지나치게 우후죽순 개발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신 대표: 사실 이곳저곳 다녀보면 보이는 문제가 많다. 전남 영암군 월출산 자락에 있는 길 같은 경우 5억을 들여 약 2km 구간을 만들었다. 평탄한 길에다 인공적으로 길을 깎고 거기에다 비싸고 미끄러운 박석을 깔았는데 이는 우천 시에 굉장히 위험하다.

충남 보령에 있는 ‘가고 싶은 섬’의 외연도 같은 경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들이 많이 훼손됐다. 서울 남산의 소월길은 약 3.8km 구간을 44억을 들여 만들었다. 아무리 서울이 금싸라기 땅이라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길은 굳이 표지판을 하지 않아도 다 찾아갈 수 있는 있는데 몇 천만 원씩 용역비를 들인 경우도 있다. 해당 용역업자 조차 용역의 필요성에서 대해 의구심을 가질 만큼 불필요한 용역이었다.

윤정준 (사)한국의 길과 문화 이사

-윤 이사: 걷는 길이 많이 생기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여행길 사업을 한다 할 정도로 과열됐다. 그리고 최근 너무 빠르게 여행길 개발이 진행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전체 공간에 대한 논의나 계획 없이 걷는 길에 과도한 시설을 만들고 짧은 시간동안 중앙부처에서 받은 예산을 사용해 조성사업을 한다면 예산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중앙부처간에 경쟁하듯이 조성사업을 하거나 인근 지자체끼리 연계가 잘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금 시점에서는 새로운 길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사라진 역사적인 길을 찾아 잇고 복원해 보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행길 ‘추천 사례’와 ‘안좋은 사례’를 꼽자면?

-신 대표: 개인적으로 ‘찾고’, ‘잇고’, ‘걷고’라는 의미의 ‘3고(쓰리고)’라는 말을 쓴다. 원래 존재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길을 찾아서 끊어진 구간을 잇고 그 길을 걸으면 된다.
이번에 전주 천연고도 옛길을 찾아 12개 코스를 만들었다. 사실 만들었다기보다 길을 찾아 이었다. 별다른 인공적인 손길 없이 단풍나무와 편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에서 황톳길로 이어지는 코스인데 손에 꼽을 만한 좋은 길이다.

그 지역의 길에 정통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길을 만들면, 돈을 적게 들이고도 좋은 길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좋은 길을 만들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윤 이사: 지금 지자체가 만드는 길은 대부분 좋은 사례가 없다. 현재 이용자들이 많은 곳을 보면 대부분 민간단체가 주도한 길이다. 어떤 지역이든 해당 지역 사람들이 그곳을 가장 잘 알고 있다. 또한 조성할 때도 철학이나 원칙을 가지고 진행하기 때문에 좋은 사례가 많다.

길을 만들기보다 옛길을 찾고 인근 주민들을 설득시키는 관계 정립과 향후 관리운영도 중요하다. 지자체는 예산계획을 세워서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한계가 드러난다.
공무원들이 짧은 시간에 예산을 짜고 제한된 시간 안에 가시적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업을 해야 되는 구조에서 일을 진행을 한다. 그러다보면 급하게 기계를 이용해 작업을 하는데 끝이 좋지 않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로 환경부에서 10억 받아서 전북 임실 섬진강 상류에 있는 옥정호 근처에 조성된 길은 집게차 등이 작업하고 나서 마무리를 잘 안했고 현재 아무도 찾지 않는다.
옛길을 잘 복원한 사례로는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인월-금계) 내에 있는 장항마을-중군마을 구간이다. 전문가들에게 최고로 손꼽히는 곳이다.

▲향후 개선사항과 발전방향을 모색하자면 어떤 식으로 개발되어야 하나?

-신 대표: 길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우선적으로 인문지리학이 전제가 되어 철학적 접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중구난방으로 길을 만들어 구간이 중복되는 길이 있는 등 예산낭비가 있다.

중앙에서 하나의 부처를 만들거나 통솔 사무관을 파견하는 등의 통합적인 관리를 통해 예산낭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길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길을 설명해 줄 해설사를 양성해야 한다. 길을 방문한 여행자가 해설사를 통해 그 길의 역사를 이해하고 걸을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민간단체가 주도하고 지자체가 도움을 주는 게 방식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길 개발에 참여하는 민간단체도 정말 그 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단체가 나서야 예산이 떨어지더라도 유야무야 되지 않는다.

-윤 이사: 길의 위계나 등급을 줘서 ‘국가급탐방로’ 제도를 도입했으면 한다. 영국은 이 제도를 도입해 국가위원회에서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조사 후 지정해 매년 관리하고 있다.

‘국가급탐방로’ 외에도 중앙부처에서 예산이 나가는 길이라면 디자인, 경관, 시설 등에 대한 기본 가이드라인이 제시돼 지자체가 구체적으로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자체가 개발하는 길 중에서도 좋은 사례를 만들어 그 길을 롤모델 삼아 연구해 가야한다.

이용자들은 안목이 높고 선택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그래서 향후 지금의 열풍이 자연스레 누그러지고 옥석이 가려질 것이다.

▲도보여행자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신 대표: 여행은 남루하게 하는 것이 좋다. 고통을 즐겨라. 도보여행은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 자고 바라보는 모든 것에 경탄해라. 지나고 나면 고통은 사라지고 즐거움만 남는다.

-윤 이사: 도보여행을 할 때 지역의 문화 자연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착한 여행자로써 마음과 몸가짐이 있어야한다. 향락여행이 아닌 착하고 아름다운 여행으로 즐기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