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실종사태
꿀벌 실종사태
  • 이재의/전남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 승인 2011.07.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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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의 / 전남 나노바이오 연구센터 소장
항해 중인 배 안에서 쥐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폭풍우가 몰아칠 조짐이라고 한다. 중국의 쓰촨성 대지진 발생 직전에 두꺼비 떼가 출몰한 사실이 목격됐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에서는 영양 떼가 지진해일이 발생하기 전 해변에서 언덕으로 이동했다. 스리랑카 야생동물 국립공원에서도 표범 코끼리 원숭이 등이 쓰나미 직전에 일제히 고지대로 몸을 피했다.

2005년 파키스탄 지진 직전에는 까마귀들이 날카로운 울음을 내며 둥지를 떠났다고 한다. 최근 백두산 인근지역에서도 지렁이나 뱀, 두꺼비가 집단으로 길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혹시 화산폭발을 감지한 동물들의 반응이 아닐까? 영국 생물학자 레이첼 그랜트 박사는 ‘전조동물’의 행동에 대해 연구한 결과 재난과 동물의 예지능력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조동물’의 예지 능력

헌데 몇 년 전부터 꿀벌의 ‘집단가출’과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어느 특정지역에서만 그런게 아니라 미국과 남미, 유럽, 우리나라 등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지난해 미국 농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2006년 11월 처음 시작됐다. 이듬해인 2007년 6월까지 35개 주까지 퍼져 35%정도의 벌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경향은 그 후에도 지속돼 2009년 29%, 2010년 34% 정도가 지속적으로 없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농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3~4년 사이에 31만7천 군, 토종 꿀벌의 76.7% 이상이 폐사했다고 밝혔다. 토종벌 농가 모임인 한국토봉협회는 이 보다 많은 95%가 폐사해 사실상 국내 한봉산업은 궤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국의 토종 꿀벌 농가는 3만여 가구인데 대부분 양봉을 포기한 상태로 알려졌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토종 꿀벌만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벌써 4년째나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꿀벌감소의 파장

꿀벌의 급격한 감소는 다양한 파장을 몰고 온다. 꿀을 첨가물로 사용하는 아이스크림이나 화장품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겐다즈의 모기업인 다국적 식품기업 네슬레는 시중에 공급하는 60여 가지 맛 가운데 40%가 꿀벌을 매개로 한 식물의 수분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꿀벌의 감소로 아이스크림 공급 체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하겐다즈는 아예 꿀벌 감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에 매년 25만 달러씩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꿀벌을 첨가하여 화장품을 만드는 우리지역 기업들도 비슷한 애로를 호소한다.

정작 심각한 것은 원예농업 쪽이다. 모든 농작물의 3분의 1은 곤충의 꽃가루받이를 통해 이뤄진다. 그 가운데 꿀벌이 80%를 담당한다. 특히 사과, 딸기, 배, 복숭아, 블루베리, 체리, 멜론, 아몬드, 커피 등 과일이나 견과류의 화수분에 꿀벌이 작용하는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밖에도 콩, 브로콜리, 샐러리, 호박, 오이, 목화 등도 꿀벌의 수분활동이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소가 즐겨먹는 자주개자리라는 식물도 꿀벌 없이는 번식할 수 없다. 꿀벌이 사라지면 각종 과일은 물론 쇠고기도 식탁에서 크게 줄게 될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직접 일일이 수분작업을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일 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여 판매하는 농장에서는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꽃가루받이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야생벌이나 다른 곤충들로는 감당할 수 없다. 오로지 꿀벌만이 방대한 작업을 신속하게 해 낼 수 있다. 꿀벌 부족은 당장 농산물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 사과농장에서는 꿀벌 군집 하나당 35~45달러에서 지난해 65달러로 치솟았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일일이 꽃가루받이 작업을 하게 되면 100㎡당 200~1000엔까지 생산단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지는 벌이 식물 수정을 통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연간 약 45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식물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위협일지 모른다. 지구상 식물의 절반 이상, 농작물 대부분이 꽃가루받이를 꿀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환경단체 어스워치(Earth Watch)는 꿀벌을 플랑크톤, 박쥐, 곰팡이, 영장류와 더불어 대체 불가능한 생물 5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 만큼 꿀벌은 식물 생태계에 소중한 존재다.

 



‘밀집사육’이 불러온 환경변화

일단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 토종 꿀벌의 경우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치사율 100%인 바이러스성 감염병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비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봉군붕괴증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 때문인데, 벌이 죽는 게 아니고 텅 빈 벌집만 남겨놓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현상이다. 낭충봉아부패병과 CCD는 뚜렷하게 다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점은 벌들이 집단폐사하거나 사라지는 정확한 원인을 아직 누구도 잘 모른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살충제 농약의 남용, 휴대폰 전자파 등 도시화로 인한 벌의 행동습성 변화, 유전자적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질병이나 오염물질에 취약해진 점, 기후변화로 인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 등이 복합적 원인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복합적인 원인을 한마디로 아우르면 ‘환경변화’다.

벌은 한데 모여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한다. 이런 현상을 ‘초개체(Superorganism)'라고 한다. 꿀벌이 초개체로 진화한 것은 생물학적, 진화적 장점 때문이었다. 애벌레가 들어있는 벌집 근처에서 벌들은 끊임없이 날개를 떨고 있다. 어깨의 비행근육을 진동시켜 온도를 35도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습성 때문이다.
벌에게는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해 먼 거리까지 이동했다가도 돌아오는 능력이 존재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휴대폰 전자파가 자기장을 방해함으로써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증가시켜 벌들을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초개체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취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사람이 주는 먹이와 과수농장, 채소밭 등 인공생태계에 의존하는 생활방식은 생태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꿀벌의 ‘밀집사육’은 대표적인 취약 원인으로 꼽힌다. 자연 상태에서 흩어져 살다 벌통의 밀집사육으로 바뀌면서 큰 변화가 뒤따랐다.

바이러스 같은 질병이 돌면 순식간에 감염될 수 있고, 급격한 온도변화로 인해 쉽게 군집 자체가 와해되기도 한다. 해마다 밀원을 찾아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벌통을 옮겨가는 것도 벌들에게는 대단한 스트레스다.
벌은 기억력이 좋아서 처음 꿀을 딴 꽃의 종류와 색을 기억해두고 그 꽃에서만 꿀을 모으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밤중에 벌통을 이동하고 나면 새로운 환경 때문에 매우 예민해지고 그 결과 쇠약해진다.

편식, 면역력 약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물이 다양한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방법은 그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적절한 때에 신속하게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환경 적응력은 약해진다.

인간은 꿀의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벌에게 설탕물을 주기도 한다. 이런 인공먹이는 자연상태의 꽃가루에서 얻는 꿀에 비해 영양 구성성분이 단조롭다. 또한 한두 가지 종류의 식물만 몽땅 심어놓은 과수원에서 얻은 꿀도 영양성분이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벌이 편식을 하는 것이다.
편식은 벌의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 단조로운 영양 성분은 벌의 장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도 단조롭게 하여 바이러스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벌 전문가인 독일의 베렌바움 교수는 2009년 유전자 마이크로어레이 기법을 이용해 벌의 DNA를 분석한 결과 CCD에 걸린 벌의 장 내 유전자 속에 파괴된 리보좀 R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단백질 생산에 문제가 생겨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꿀벌의 실종사태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없다. 다만 큰 재앙이 닥칠 경우 ‘전조동물’이 보이는 이상한 행동처럼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급격한 생태계 변화와 어떤 모종의 연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이런 추론이 단지 기우에 불과하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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