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 팝 성공, 시작에 불과?
케이 팝 성공, 시작에 불과?
  • 채복희/시민의소리 이사
  • 승인 2011.06.2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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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 시민의 소리 이사
프랑스 소설가 장 폴 뒤부아의 작품 ‘프랑스적인 삶’은 샤르 드골장군(1890~1970)부터 쟈크 시라크(1996~2007)대통령까지 정권의 교체를 배경으로, 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꾸며간 시대소설이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역사소설풍이 아니라 미세한 개인적 삶에 초점을 맞춰 기술해가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재미가 쏠쏠해 발표 당시부터 화제를 불렀고 그에 따라 저명한 작품상도 여럿 받았다고 한다.

내용을 한두개 엿보자면, 예컨대 소설 속 10대를 막 넘긴 주인공 소년은 성적 호기심에 시달리면서 친한 친구 부모님의 성생활을 엿보게 되고 그에 따른 동년배 친구의 성적 기갈 증세까지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어느 정도 우스운가 하면, “우리 엄마만 아니라면 말이지”라는 대사가 있다. 모친마저 성욕의 대상으로 보인다는 조숙한 소년의 발광어린 이 대사는 아마도 성장소설의 대표적 고전이 되었을 성 싶다.

장성한 청년으로 성장한 주인공은 1960년대 프랑스 대학 운동의 한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당시 부르조아 젊은이들의 도를 넘은 방탕한 생활 속에 끼게 된다. 혈기에 찬 의식분자이면서 감정의 격랑 속에 있는 주인공이 겪는 혼돈은 거대한 사회 변화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한 회색인 중간계층의 모습을 그대로 되살린다.

그의 모습이 특별히 인상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로부터 한세대 차 즉 30년 뒤에 닥친 우리나라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정치적 혼란기에 태어났지만 너무나 비정치적이고 개인적 삶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섬세한 감성을 지닌 청년을 당대 프랑스 사회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마구 흔들어 댄다. 이 대목에 들어서면 70~80년대 한국의 대학에 진학한 한 젊은이가 겪었던 모습이 거울처럼 반사된다. 그러나, 물론 많이 다르다.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 의식, 역사가 다른데 절대 같을 수는 없다. 굳이 찾자면 비슷한 것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주인공의 젊은 시절과 이후 살아갔던 개인적 일상사가 우리 정서에 다가가는 이유는, 아마도 인간 누구에게나 ‘생과 멸은 같다는 점’ 때문일 수 있다. 어쨌거나 태어나 아프거나, 혹은 별탈없다 해도, 열심히 살면서 죽는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세상에 뭔 일이 벌어진다 해도 (한 개인에 있어서는)다를 바 없다는 측면에서 똑 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 먼 나라 서양의 한 청년이 겪은 인간사가 거부감 없이 다가오면서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야기 구성에 따라 대통령 즉위 시기별로 갖게 된 프랑스 사회 변화를 기술한다면 그냥 말 그대로 정치소설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까지 어디 이야기가 한두개 뿐이겠는가. 프랑스 뿐 아니라 독일, 기타 유럽인들, 혹은 지구촌 이 나라 저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듯 근대 이후 오늘 현재까지 한반도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못해 어쩌면 살기에 지루한 인간들에게는 최적의 놀잇감이 많은 동네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현재는 소설이면 소설, 드라마면 드라마, 뭐면 다 될 곳이다.

그런데 요사이 케이 팝이 유럽을 달구고 있다 한다. 이 나라 한반도 조선땅의 이야기거리가 산더미 같은데 대박은 겨우 노래 하나에서 터뜨렸다. 그러나 뭐든 어쩌랴, 다 좋을 노릇이다.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적어도 OECD국가 중에서 놀라운 화제를 가진 몇 안 되는 나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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