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길을 찾다 제4강]
‘다문화가 힘이다’
[아시아에서 길을 찾다 제4강]
‘다문화가 힘이다’
  • 편수민 기자
  • 승인 2011.05.09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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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나눔회 사무총장, 이자스민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광주지역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아시아 문화이해를 위한 공개강좌를 마련했다. 지난 17일부터 문화전당역 앞 아시아문화마루(쿤스트할레)와 광주교대 대강당에서 모두 6회에 걸쳐 격주 목요일로 진행되는 이번 공개강좌는 ‘아시아에서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시민의 소리>는 독자를 위하여 이번 강좌를 매 회마다 현장의 소리를 전달한다.<편집자 주>

 

‘아시아에서 길을 찾다’의 제4강은 물방울 나눔회 사무총장인 이자스민의 ‘다문화가 힘이다’란 주제로 진행됐다. 그는 작년 10월 열린 G20 정상회의 기념 '대한민국 선진화, 길을 묻다' 릴레이 강연에서도 다문화에 대한 강연을 한 바 있다.
그는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 남성과 결혼해 16년 이상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명실상부 다문화 1세대의 여성이다. 선한 인상과 함께 지적인 매력과 단호함이 엿보이는 그녀에게 다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자스민 사무총장은 강연에 앞서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했다. “제가 16년 이상 한국에서 살면서의 경험과 생각, 느낌을 여러분께 전달하겠다”며 “저는 사실은 일반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라고 말한 뒤 그의 ‘유쾌한 수다’가 시작됐다.

국제결혼과 편견

슈퍼맨의 얼굴은 사각형이다(남편의 사진을 보여주며). 남편을 보자마자 슈퍼맨 생각이 나서 잘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필리핀에서는 각진 얼굴이 흔하지 않는데 한국에 왔을 때 사방이 사각형이었다.
17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국제 결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는 다문화라는 말은 없었다. 당시 나는 필리핀과 한국에서 공통된 편견의 시선을 받았다. 필리핀에서 외국인과 결혼하는 여자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오해가 그것이다.
공부를 못하거나, 못생기고 돈이 없는 등 뭔가 하나 부족해서 외국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생각을 한다. 80년대 한국 여성도 비슷한 편견 속에서 국제결혼을 한 것처럼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혼 당시 시가 친정 가릴 것 없이 양쪽의 반대를 받았다. 단지 국적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 반대들을 무릅쓰고 결혼해 한국을 왔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무료지원 등도 없었지만 오히려 편했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당시 한국 남성과 결혼한 타국 출신 배우자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낳았다. 외국인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가져주고 관심을 가져줬다. 식당에서 한국말을 했다고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해 시키지도 않는 반찬이 나오는 등 친절한 반응이었다.
당시 나는 남편이 말하는 한국의 정은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한국의 정을 배워갔다. 요즘 국제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라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걱정하는 눈이 많다. 국제 결혼 후 3~4년이 지나도 한국어를 못하면 문제로 여겨진다. 이런 현상이 주위에 많아졌고 다문화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문화에 대한 생각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의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어요?”가 아닌 “아 다문화시죠?” 라는 어법에 맞지 않는 이질적 질문이 돌아왔다. 당시 어떠한 생각으로 다문화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다문화라는 말은 사용되기 시작했고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에 와서 결혼을 전제해서 한국에 이민한 사람을 다문화 1세라고 칭한다. 2세는 결혼해서 낳은 아이를 말한다. 일단 다문화 1세라고 하면 나 같은 사람을 이야기 한다. 한국에 와서 결혼을 전제해서 한국에 이민한 사람을 1세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2세는 당연히 결혼해서 낳은 아이다.
그런데 1.5세는 무엇일까? 예전에 러시아에 갔을 때 일이다. 러시아에서 줄을 다문화 1세 다문화2세 이렇게 줄을 세웠다. 근데 한국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아이를 1세와 2세 사이에 줄을 세우는걸 보고 왜 어린 아이가 남의 기준에 맞춰 서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사람들에게 다문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들에게 ‘다문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세요?’ ‘동남아여성? 외국인이랑 결혼한 여자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외국인과 한국인이 결혼하면 다문화로 인식한다.
근데 어떤 자리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이야기 했다. ‘다문화가 별거냐 경상도랑 전라도랑 결혼하면 다문화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음식도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이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다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너는 지역감정을 일으키고 싶으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지역감정을 잘 몰랐지만 도대체 다문화라는 단어가 무슨 단어 길래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다문화를 얼마나 나쁘게 생각했기에 이렇게 화가 났을까? 여러분 한번쯤은 내가 다문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래서 나는 강의를 할 때마다 단 하나의 액티비티(activity)를 시킨다. 이중에서 다른 거 하나가 무엇인가? (그는 강연을 할 때마다 하나의 장면을 청중에게 보이고 질문을 던진다.)
이중에서 다른 거 하나가 무엇인가? 초록색, 동그라미, 왜 다를까? 이 문제는 자신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문제의 답이 달라진다.
여기에 있는 사람을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달라고 하면 사람들이 당황할 것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세 가지로 나눌까 라는 많은 생각도 있겠지만 간단하게 안경 쓴 사람 안경을 안 쓴 사람, 그리고 렌즈를 사용한 사람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보통 가장 많이 이야기 하는 게 외모이다.
또는, 기혼 미혼 이혼 이렇게 나누기도 한다. 학생에게 물어보니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 볼만한 사람 이렇게 나눴다. 안경의 착용이 그 기준이 될 수도 있고 혼인 여부 외모의 특징 등 다양한 기준들이 있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

맨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무서웠던 것이 음식이었다. 음식이 왜 무서울까. 외국인에게 음식이 무서운 이유를 물어보면 한국에는 빨간 음식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음식의 가지 수이다. 이유는 이 많은 음식을 내가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시댁에 갔는데 첫 식사가 저녁식사였다. 첨 봤는데 반찬가지수가 정말 많은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반찬 한가지로도 밥을 먹는다. 그래서 우리 시댁이 부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1주후 2주후에도 똑같은 음식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 많은 음식을 끼니때마다 만들지 않아도 되고 시댁이 부자가 아니란 걸 알았다.
도대체 우리 시부모님은 얼마나 못 살 길래 이렇게 음식을 한 번에 많이 사서 계속 먹나 하고 단지 내 기준으로만 봤었다. 나중에 알았다. 한국의 밑반찬 문화를.
그다음으로 무서웠던 것이 한국어다. 한국어의 이중성을 배웠을 땐 계란이라고 알려주고 냉장고에선 달걀 가져오라고 하는 등 무슨 이중언어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이 눈과 떨어지는 눈도 다르다는 것은 어떻게 구분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중 한국어가 무서웠던 이유가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른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외국인이 말을 못알아 들으면 귀먹었다고 생각한다. 귀가 안 들려서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해 같은 말을 반복을 하면 목소리가 계속 커진다.
그래서 내가 왜 매일 혼나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니가 귀가 안 들려서 그런 줄 알았다”고 해서 오해가 풀렸지만 한국어가 무서웠던 존재가 됐다.
근데 시어머니가 왜 무서울까? 필리핀에서 대가족으로 사는 건 비슷하다. 그런데 다른 건 남자가 여자 집으로 결혼을 오는 것이다. 그래도 같이 대가족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됐다.
그리고 남자가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여자 집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은 완전히 달랐다. 대가족으로 사는 건 문제가 안됐지만 언제부턴가 시부모님이 무섭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다가와서 저한테 누구랑 사냐고 물어봤을 때 시부모님이랑 산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얼굴이 불쌍한 표정으로 변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하면 똑같은 표정을 짓고 ‘쯧쯧쯧’ 했다. 내 생각에는 가족 수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서 다음에 말할 땐 시할머니도 같이 산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더 슬프게 곡을 했다. 그때부터 무섭기 시작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시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기에 사람들이 나를 하나같이 불쌍하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와서야 왜 한국에서 큰아들이랑 결혼을 안 하는지 이해가 됐다. 필리핀에서는 막내딸이 부모님을 모신다. 한국이랑 반대다.

다문화의 미래 비전

“다문화가 한국의 힘이다”라는 말을 하면 어떤 이는 불쾌히 여긴다. 이자스민은 다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G20 행사 때 한국인 봉사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왜 봉사를 하세요?”라는 질문에 여러 분야를 접하고 싶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국에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제2의 하인스워드 같은 빛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No man is an island"라고 외치며 글로벌 시대에 그 누구도 혼자 살수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과 접촉을 하고 그 사람의 생각 문화를 이해해야지 잘 살 수 있다. 남의 문화를 배우면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움직이고 생각하는지 알게 된다. 이자스민 또한 한국에 와서 그걸 배웠다.
굴 속에 이물질을 넣어 진주를 만든다. 원래 있었던 무엇인가에 이물질을 넣었고 그것을 방어하다가 아름다운 진주가 만들어진다. 그는 그러한 진주를 만들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다문화사회는 다수자와 소수자가 같이 노력해야 바람직해진다. 다수자는 소수자를 인정하고 서로 힘을 합쳐야 진정한 다문화사회가 된다. 한국사회는 진행 중이다. 포커스를 맞추려면 모든 구성원이 힘이 필요하다며 피력하며 강연을 마쳤다.
이날 그의 강연은 광주교육대 대학원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명강연 명연설은 언제나 대중의 소외 속에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아시아문화강좌 1강 때와 비교해 청중의 수가 현저히 준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웠다.
아직 5강과 6강이 남았다. 끝까지 지역시민들의 많은 관심 속에 마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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