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보다 더 고소한 이웃사랑 이야기
참기름보다 더 고소한 이웃사랑 이야기
  • 김복순
  • 승인 2011.01.24 15: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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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마음을, 소박하게 나눌 뿐입니다.”
‘사랑 애(愛) 참기름’ 파는 송경자(51)씨
슈퍼 물건보다 참기름 팔릴 때가 더 행복해
불우이웃위해 함께해주는 주변사람들 고마워”

봉사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송경자씨
오전 열시에 그녀를 찾았다. 마침, 그녀는 슈퍼에서 참기름을 병에 담고 있었다. 손님들이 오가고 대리점 물건이 들고나고 전화가 여기저기서 오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인 바쁜 시간이었다.
그 바쁜 시간 속에서 그녀는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죠? 하며 병 속으로 참기름을 깔때기를 통해 넣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직접 깨를 사서 금방 짜온 참기름이었다. 방림1동사무소 10병, 교유가 주문한 10병이었다. 주문한 참기름을 방림1동사무소에서 남자직원이 가지러 왔다. 그녀는 그 순간에도 동사무소직원에게 참기름을 많이 사달라는 부탁을 했다. 남자직원 역시 그러지요, 라며 흔쾌히 답변했다. “참기름을 병에 담을 때가 행복하고, 담긴 참기름 병이 이렇게 팔릴 때는 더 행복해요.”
그녀는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1동에서 남편과 함께 참치 대리점을 운영했다. 그리고 대리점 옆에 딸린 조그만 공간에서 슈퍼도 운영했다. 그런 그녀는 참치와 슈퍼에 진열된 물건보다 보다 참기름이 팔려 나갈 때가 뺨이 상기되는 이유는 뭘까? ‘사랑 애(愛) 참기름’ 때문이었다.
“2007년도부터 시작했는데 그해에 2500병 팔았어요. 얼마나 재밌고 신이 났는지 몰라요. 회원언니들하고 저희 슈퍼에서 밥해먹으면서 병에 담고 주문받고 배달하고 했어요. 그리고 남은 수익금을 서로 계산하면서 행복해 했죠.”
주위의 불우한 이웃에게 전달되는 사랑愛참기름


그녀가 참기름을 자신의 슈퍼에서 팔기 시작한 건 2007년도부터였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과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이 모여 만든 바르게살기 협의회의 ‘사랑 애(愛) 참기름’이었다. 그녀가 맡아 기록하는 장부를 보았다. 장부에는 그 동안 바르게살기 협의회 회원들과 참기름을 팔아 남긴 수익금, 불우이웃에 전달된 금액들, 주문받은 곳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대상자는 형편이 어려워 급식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부터, 모자가정, 독거노인, 지체장애 등 다양했다. 그리고 하루끼니가 어려운데도 여러 사정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이 안 된 곳으로도 전해졌다.
바르게살기 협의회의 ‘사랑 애 참기름’ 이야기는 이곳저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학교, 주변지인들, 동네사람들, 방림1동사무소, 등 먼 곳에서도 연락이 오고 도움을 줬다. ‘한국지역 난방공사 용인지사’ 에서는 한꺼번에 70병을 사주기도 했다. 날마다 장부에 기록되는 내용들이 늘어갔다. 바르게살기 회원들은 명절에는 더 바빴다. 하지만 많이 팔리는 참기름 때문에 신이 났었다.
그런데 함께 꾸려갔던 회원식구들이 하나 둘 직장에 들어갔다. 주문은 많아지고 일손은 줄어들었다. 회원식구들이 일하면서도 틈만 나면 배달도 하고 주문도 받아와주었지만 함께 할때 만큼은 안 되었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이 더 열심히 도와줬다. 지금처럼 깨를 사다 짜주고, 택배 붙이는 일도 하고  배달도...

친구, 동생 등 주변사람들과 동네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신협이사장으로 퇴직하신 분이세요. 제가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동네분인데 아예 참기름 일 도와주시려고 제 슈퍼에서 사세요.” 그녀 곁에 있는 남자를 보고 그녀가 한 말이었다. “사랑 애 참기름 냄새가 진하기는 하나 봐요. 모두가 꼭, 해야 할 일처럼 함께하니 말이에요.”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녀가 방림1동에서 산지는 10년 됐다. “저희가 이사 온 후로 이 동네가 달동네 되었다고 동네 분들이 말해요. 무슨 일이 있어 잠시만 가게 문을 안 열어도 혹시 이사 갔나, 하고 불안 해진대요. 그 말씀이 진심이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로 해서 조금이라도 마음들이 정말로 따뜻해졌다면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게 제 마음이거든요.”
불우이웃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려는 삶은 갑자기 일었던 건 아니었다. 경기도 안양에서도 살았고 전라도 목포에서도 살았다. 안양에서는 고향사람들과, 목포에서는 대리점 직원들과 한 마음이 되어 빈병이나 재활용 종이를 모아 판돈으로 음식을 만들어 고아원에 전달했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은 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인 것 같다고 했다.

2007년부터 어려운 사람에게 참기름을 전달하면서 기록 해온 노트

고향은 완도이고 그녀는 10남매 속에서 살았다. 어릴 때, 그녀 집에 오는 보따리장수에게 부모님은 밥과 잠자리를 내주었다. 그래서인지 보따리장수들은 늦으면 으레 그녀 집에서 밥 먹고 자고 갈 줄 알고 들렀다. “부모님이 물질적 재산은 남겨주시지 않았어도 남을 돕는 마음은 남겨주신 것 같아요.”
그녀는 50이 되면 봉사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이 삶인가 봐요. 그래서 슈퍼에 있으면서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참기름을 팔게 되었어요.” 그녀는 사실 인터뷰를 거절했었다. 봉사한다는 일로 인터뷰하고 하는 걸 남편이 별로 안 좋아한다는 이유였다. 소박한 일은 소박하게 하는 것이 소박하다는 것도 남편이 자꾸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 말처럼 소박한 마음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것인가.
그녀에게 3남매가 있다. 그 중 큰아들 (이진혁·23)이 해양경찰로 복무 중에 있다고 했다. 바둑에 소질이 있던 큰아들이 완도군수배바둑대회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했고 상금을 받았다. “저는 몰랐어요. 엄마인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어려운 청소년에게 전달해주라고 해당지역 면사무소에 상금전액을 맡겼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아이들에게 남을 도우며 살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스스로 이는 것을 보고 뿌듯했어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던 그녀에게 앞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참기름 많이 파는 거죠, 였다. 그녀의 말대로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지는 고소한 ‘사랑 애(愛) 참기름’이 많이 팔리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끝냈다. 김복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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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신 2011-02-01 10:01:09
항상..얼굴을 뵐때 웃는 얼굴에 많은 힘을 얻곤 하는데....
역쉬나~~ 라는 말이 절로 나네요^^ 참기름의 고소한 향기가.. 이곳까지~~~오는 듯해요.
남들에게 베푸는 사랑이 사장님께 더 많은 사랑으로 돌아오는 듯해요! 항상 사랑을 전달하고 웃음을 전달하는 우리 사장님은 웃음 전도사~~~

조현주 2011-02-01 09:06:35
항상 좋은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것을 눈치로는 알고 있었지만 알고보니 정말 인생을 멋지게 사시는 분이네요~~ 항상 밝은 얼굴로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스트레스에 짜증이 나도 사장님을 뵈면 기분이 업^^ 되곤 하엿는데 축하드립니다..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즐겁고 멋진인생 쭉~~~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