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농사는 건강 지키는 일이면서 놀이”
“텃밭농사는 건강 지키는 일이면서 놀이”
  • 나정이 시민기자
  • 승인 2010.10.27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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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뜨락’ 숙지원(淑芝園) 가꾸는 홍씨 부부

삭막한 도시에서 뒤돌아 볼 여유 없이 쫓기듯 살다보면, 어느 날 문득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귀촌을 꿈꾼다. 공해로 찌들어 있는 도시를 떠나, 스스로 키운 안전한 농산물을 먹으면서 여유작작한 느림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교사이면서 소설가인 홍광석(61)씨의 경우도 그렇다. 퇴직 후 고향집 마루에 앉아 글을 쓰고, 가끔씩 친구들을 불러 회포를 풀면서 살고 싶다는 평소의 꿈을 생각보다 일찍 실행하게 된 것은 아내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였다.

교육운동가인 홍씨는 10여 년의 해직기간을 거친데다가, 수배자가 되어 잡혀가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대신 해서 가장역할을 하고 남편의 뒷바라지까지 했던 아내가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게 된 것이다. 아내의 뜨락인 텃밭 만들기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텃밭이름도 아내의 이름 끝 글자인 맑을 숙(淑)에 향기로운 풀이라는 뜻의 지초 지(芝), 뜨락을 나타내는 동산 원(園)인 숙지원(淑芝園)이다.

천여 평의 숙지원에는 넓은 잔디밭과 철쭉길, 소나무밭이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식재된 자두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모과나무, 매실나무, 목백일홍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텃밭에는 야콘, 고구마, 토란, 도라지, 부추, 마늘, 양파, 고추, 강낭콩, 상추, 딸기 등 여러 농산물이 제 계절에 맞게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아내가 만들어 놓은 화단에는 패랭이, 달리아, 수레국화, 샤스타데이지, 팬지, 마가렛, 수선화, 비비추, 해바라기, 꽃양귀비, 튤립, 국화 등이 번갈아 피고 지면서 계절의 흐름을 알려준다.

▲ 홍씨가 아내와 지인이 텃밭에서 고구마 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귀촌 4년 차인 홍씨는 아직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사는 곳이 광주에 있으니 엄밀히 말해서 완전한 귀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던 숙지원을 온갖 나무와 꽃, 안전한 먹을거리들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는 능숙한 일꾼들을 부리거나, 비싼 나무를 사다가 심은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부부의 땀방울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두 사람은 쉬는 날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숙지원에서 살았고, 평일에도 아예 숙지원으로 퇴근했다. 또한 몇 그루의 나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린 묘목을 사다가 심었고, 삽목도 했다. 처음 1, 2년은 몹시 힘들었다. 그러나 귀촌 3년 차부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면서 익숙해졌다. 그렇게 자연과 함께하다 보니, 아내의 몸이 좋아졌다. 병으로 그만두어야했던 직장에 복귀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전원생활에 관심은 있지만, 육체적인 노동이 부담스럽다는 사람들에게 홍씨는 “텃밭에 심는 모든 것들이 심는 시기와 수확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한 가족이 먹을 분량의 농사라면 허리를 못 펼 정도는 아니다.”라며, “텃밭농사는 건강을 지키는 일이면서 놀이”라고 적극 추천한다.

숙지원에는 아직 집이 없다. 퇴직 후에 주변과 잘 어울리면서도 과하지 않은 집을 잔디밭에 들일 생각이다. 집은 없어도 사람들이 들고날 돌길은 있다. 처음에는 발길이 닿는 곳이 곧 길인데, 굳이 길을 놓아야 하나 싶어서 주저했다. 그러나 실용성보다는 쉼터로 가는 방향을 일러준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서 돌길을 놓았다. 징검다리식 돌길에는 숙지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느림이 주는 여유를 느껴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홍씨는 “일부러 초대하지는 않지만, 오는 것을 막지도 않는다.”라고 말한다. 주인의 초대가 없어도 숙지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기지 않는다. 농사를 놀이로 생각하는 유쾌한 농부와 애써서 키운 채소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숙지원의 주인인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홍씨는 숙지원을 찾는 지인들에게 상추잎을 따고, 고구마를 캐는 등 직접 체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자연이 주는 풍성함을 느껴보라는 의미이다. 숙지원에서 자라는 것들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면서 자연이 주는 느림의 삶을 살고 싶다는 홍씨 부부는 지인들이 체험삼아 수확한 농산물을 봉지에 담아서 준다.

봉지마다 야콘, 호박고구마, 토란, 부추 등 직접 수확한 먹을거리에, 부부의 넉넉한 마음까지 들어있어 돌아오는 길이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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