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동풍에 꽃잎이 열린다
매화는 동풍에 꽃잎이 열린다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10.20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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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서창동 개동마을 안영수씨

광주에서 개동깻잎, 상추하면 유명해
한양 오가던 과객들이 목축이던 우물

▲ 안영수씨.
“마을 지형이 매화꽃을 닮았고 그 매화는 동풍에 의해 꽃잎이 열린다 하여 개동(開東)이라 칭하였다.”

시 한 구절을 대하는 것 같았다. 어느 왕국의 개천(開天) 설화가 이처럼 아름다웠을까.

풍암동 농수산물센터에서 나주 방향으로 향하는 고속국도 변에 위치한 광주 서구 서창동 개동마을. 마을경로당 앞 석비에 적힌 ‘매화는 동풍에 의해 꽃잎이 열린다’는 구절이 오래된 잠언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동풍은 불었는지, 꽃잎은 아직 열리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마을 뒷산인 송학산(209m) 자락에 ‘매화낙지(梅花落地)’라는 명당이 있었다구만. 산 위에서 한 폭의 꽃송이처럼 떨어진다는 지세인데 지관들이 거기를 찾을라고 애를 쓰고 다녔대. 근디 여적 못 찾았다는 말이 전해.”

밭 작물에 물을 주고 온다는 안영수(70)씨는 “그 명당이 우리 마을을 뜻하는지 묘 자리를 말하는지는 모르제.”라고 알듯 모를 듯한 미소만 지어보였다.

30여 호 남짓한 마을은 가파른 바위산인 송학산 아래서 꽃잎을 펼친 듯 평화로웠다. 소 여물죽을 쑤는 연기가 굴뚝으로 나부꼈고 저무는 가을에 노랗게 감이 익어가고 있었다.      

마을의 서쪽으로는 봉황산(169m)이 우뚝한데 봉황산 기슭에 죽산 안(竹山 安)씨의 선산이 약 600여 년 전부터 있었다고 전해 안씨들이 처음 자리를 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그 다음으로는 장흥 고씨가 많다.

“안씨는 천석을 하고 고씨는 빛을 많이 냈다는 말이 있어. 안씨는 부유했고 고씨 집안에서는 큰 인물이 많이 났다는 말이제.”  

하지만 안씨, 고씨 얘기는 이제 고래 적 전설이 됐다.

“학교만 가브리면 다시는 안 들어와. 어디나 그러겄제만 돈 좀 벌믄 나가브리고 쭉정이만 남았어. 나 죽으믄 안씨도 마을에서는 끝이여. 살기는 참 좋아.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 개동마을은 여름엔 깻잎, 가을에는 상추, 갓 농사로 하루해가 분주하다. 하우스가 아닌 노지재배라 맛과 향이 더 진하다.
개동마을은 상추와 깻잎의 산지로 이름이 높다.
“들은 좁아. 대신에 밭농사가 실하제. 여름에는 들깨, 가을에는 상추하고 갓을 많이 심어. 공판장에서 하루에도 서너대씩 트럭이 드나든께 적은 농사는 아니제.”

안씨에게 얘기를 듣고 보니 마을 주변으로 푸르게 자라난 잎채소들이 가득하다. 요즘 채소값이 오르면서 안씨도 400평 남짓한 하우스에 비닐을 새로 씌웠다.

“내가 언제까정 살랑가는 모르제만 하우스를 새로 씌우면 5년은 농사를 지어야 본전을 찾은단디 채소금이 좋응께 욕심을 좀 냈어. 4대강 사업 땜에 채소금이 당분간은 괜찮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여.”

안씨는 경상도 관광을 가서 낙동강 유역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천변 농사가 다 파헤쳐져 있는 걸 보고 ‘채소값이 비싸지겠구나’ 생각했단다.

“정부가 무기보담 쌀을 더 중하게 알아야 헌디, 쌀을 푸대접 허니까 하느님이 흉년을 주는 것 아니여? 올해 나락을 찧어봉께 전부 다 싸래기래아. 방앗간에서 보통 나락을 수공료로 가져간디 올해는 돈으로 받을란다는 말도 있드만.”

▲ 옛날에 남평에서 서울 가는 과객들이 꼭 그 물로 목을 축였다는 얘기가 전하는 동구 앞 우물.
안씨는 농업을 괄시하는 정부 얘기를 하다가 내친 김에 요즘 유행하는 ‘복지’담론에 대해서도 말을 거들
었다.

“난 개인적으로 노인들 복지에다 너무 투자 안 하믄 쓰겄어. 아파서 헐수 없이 못 먹고 못 입는 사람들이 쌨는디 일헐만헌 사람들이 놀아. 차라리 그 돈을 젊은 학생들 밥값으로 쓰라 이 말이여. 굶는 학생들처럼 짠한 것이 또 있으까.”

안씨는 “우리 마을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해서 큰 부자는 없어도 크게 가난한 사람도 없다”며 이는 다 마을 어귀에 있는 청정한 우물 덕이라고 했다.

“옛말에 고을 물이 좋으믄 부자가 없다는 말이 있어. 우리 마을이 꼭 그 짝이여. 그래도 모다 평평하게 먹고는 살아. 동구에 있는 우물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습고 그리 좋을 수가 없어. 옛날에 남평에서 서울 가는 과객들이 꼭 그 우물로 목을 축였다는 얘기가 전할 정도로 유명한 물이여.”

해거름녘이 되니 주변 순환도로를 비추는 가로등만 밝게 빛났고 하루 일과를 마친 마을은 본격적으로 봉오리를 닫고 쉬려는 듯 온 사방이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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