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죽음 부른 ‘체불임금’
노동자 죽음 부른 ‘체불임금’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10.20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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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하도급업체 3개월째 임금 미지급
특수고용직 신분 서영권씨 항의 분신 자살

지난 13일 전북 순창 고속도로 터널공사 현장에서 한 건설노동자가 ‘불잉걸’로 타올랐다. 사측의 상습적인 체불임금에 항의하다 스스로 몸에 불을 지펴 분신자살 한 것이다. 그의 이름은 서영권. 현대건설 하도급업체 레미콘 차량 운전기사였다.

서씨는 지난 8월부터 3개월 동안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하청업체인 정주 씨앤디이가 60일까지 ‘밑돈’을 까는 유보임금 관행을 끝내 고집해서다. 서씨는 이 때문에 극심한 ‘돈가뭄’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급기야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지경까지 내몰렸다.

▲ 지난 19일 오전 광주 상무지구 소재 영산강 환경유역청 앞. 유족들이 흐느끼는 가운데 ‘고 서영권 건설노동자 추모 및 현대건설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런데도 서씨는 체불임금을 받아낼 별다른 뾰족 수가 없었다. 지입차주라는 특수고용직 신분이 족쇄였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 대접을 받다보니 노동부의 울타리 밖에 있을 수밖에 없어서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일하다 죽거나 다쳐도 산재적용도 받을 수 없다. 

현장노동자들의 처지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급기야 체불임금의 불똥은 원청업체인 현대건설로까지 튀었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대해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였다. 현장노동자 20여명은 이날도 현대건설 내 교육장에서 밀린 임금지급을 요구하며 사측의 입장을 듣던 중이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내놓은 답변은 “기다리라”는 말이 고작이었다.
결론적으로 현대건설이 보여준 싸늘한 태도가 서씨에게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 셈이 됐다. 서씨는 시너 2통을 몸에 부은 후 교육장을 찾아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다행히 동료들의 제지로 첫 번째 화를 모면했지만 마음속에 일렁이던 불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현장사무소를 찾아간 서씨가 하청업체 소장 등 건설회사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온몸에 불이 붙어 쓰러진 것. 서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조치를 받은 후 서울 한강 성심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틀 후인 15일 사망했다.

지난 19일 오전 광주 상무지구 소재 영산강 환경유역청 앞.

유족들이 흐느끼는 가운데 ‘고 서영권 건설노동자 추모 및 현대건설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국정감사 중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의원들에게 서씨를 죽음으로 내몬 현대건설 자본의 부도덕성을 규탄하고 건설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 민주노총광주지역본부와 전국건설노조광주전남지역본부, 광주전남진보연대,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광주전남추모연대 등 참가단체들도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대건설은 정중한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고 모든 건설현장의 체불임금을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백정남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은 “건설자본들이 임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고 국민의 머슴을 자처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자본가 입장에서 서민들의 눈물을 짜내고 있다”며 “건설노동자 서영권 동지의 죽음은 자본과 정권의 이런 공모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 “아직까지 발화가 일어난 정확한 원인분석도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현대건설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점기 광주전남진보연대 상임대표는 “현대건설 대기업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불량 정치권이 이를 방조했다”며 “서영권 노동자의 죽음은 사회적·정치적 살인”이라고 규탄했다.

유족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망자가 835만원의 체불임금 때문에 분신한 것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과 아픔을 함께 한 것”이라며 “고인이 명예를 되찾을 수 있도록 사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측의 공식사과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노총광주지역본부와 전국건설노조광주전남지역본부, 광주전남진보연대,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광주전남추모연대 등 참가단체들도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대건설은 정중한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고 모든 건설현장의 체불임금을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들은 “현대건설과 같은 대형건설사들의 배는 불리면서 생계를 걱정하고 있는 건설 일용노동자와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임금은 떼이고 있다”며 “한국도로공사 같은 공공현장에서마저도 임금체불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현대건설이 대화와 사과는커녕 법적 책임이 없다고 운운하며 책임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만약 현대건설이 사태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전국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투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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