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 신일섭
  • 승인 2010.10.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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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섭 (호남대 복지행정대학원장)

지난 6일 새벽 목을 맨 어느 실직 노동자의 유서 맨 마지막에 나온 말이다. 삶의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그는 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

자살률 세계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 쉰 두 살의 실직 노동자였던 그가 홀아비로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은 한국 정치의 중심지 여의도 공원. 고아로 컸던 그는 건설 현장의 비정규직 용접공으로 살아왔으며, 거동 불편한 12살의 장애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그가 목을 맨 나무 밑에는 빈 소주병과 유서 한 장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의 유서는 지상에서 유일한 핏줄인 12살 아들을 부탁하는 글이었다.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동사무소 분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을 장애인으로 동사무소에 등록하면 치료와 함께 월 10~20만원의 장애아동 양육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근로능력이 있는 자신 때문에 장애아들이 수당을 받을 수 없었다.
 
최근 4대강 사업이니 하면서 더욱 어려워진 복지환경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그는 일자리도 잃고 실직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차라리 장애아들이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마지막 뒷일을 부탁하고 떠난 것이다. 유서 마지막에 그는 “아들아, 사랑한다”라고 썼다. 가슴이 탁 막힌다. 마흔 불혹의 나이에 얻은 아들 하나를 온갖 간난고초 속에 키우다가 이 풍진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아버지의 심정.
 
근래 실직의 어려움, 빈곤한 노후생활의 고통 등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하루 평균 42.2명(34분에 1명꼴)에 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또 하나의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약 30%에 가까운 사람들이 소위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라고 한다.
 
빈곤선에 허덕이며 사는 사람들의 비명과 죽음이 이토록 진동하지만 한편에서는 전혀 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몇 개월 전 두 사람의 결혼 뉴스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한국 최고의 어느 탤런트 부부가 요즘 득남을 했다는 소식이다.

그 산모는 서울 강남에 소재한 어느 산후조리원에서 2주일에 1200만 원짜리 산후몸조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내 돈 갖고 내 돈 쓰는데”라고 말하면 딱히 할 말 없다. 요즘 갈수록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적 행태가 우리 사회에 더욱 만연하고 있다.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제(부자들의 도덕적 의무) 정신이 아쉬운 사회이다. 
 
전에 필자가 읽었던 어느 글의 일부분을 옮겨보고자 한다. ‘미국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그가 젊었을 때 『거대한 전환』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칼 폴라니(1886~1964)를 만난다. 청년 드러커는 폴라니가 편집장으로 있던 경제 전문잡지의 편집회의에 초대받고 회의 끝난 후 폴라니와 더 이야기 나누고 싶어 그의 집을 방문한다.

전차를 몇 번 갈아탄 뒤 내려서도 20분 넘게 걸어서 폐차장과 쓰레기 처리장을 지나 삐걱거리는 판자 계단을 걸어올라 그의 낡은 아파트 5층에 이르렀을 때 폴라니 식구들은 크리스마스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예상과는 달리 너무 협소한 주택에서 아무렇게나 껍질을 벗긴 감자 한 두 개에 가장 궂은 성탄절 식사를 했다고 한다. 식사 후 식구들은 생활비를 절약하는 얘기를 하느라 바빴는데 마침 그 자리에서 보았던 폴라니 월급의 10,000분의 1도 안 되는 액수였다.

드러커는 끝내 입을 열고 물었다. “끼어들어 미안하지만 실은 조금 전에 폴라니 박사님 월급의 수표를 보았습니다. 그 정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때 폴라니 박사의 아내가 진지하게 “우리 일가는 도리를 존중하고 있어요. … 하지만 칼 폴라니가 버는 돈(능력)은 종잇장 같지요. 칼이 월급으로 받는 수표는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주고, 우리식구가 필요로 하는 걸 별도로 치는 것은 도리를 존중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당시 폴라니 가문은 선대부터 엄청나게 부유했고 얼마든지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날 폴라니를 만난 충격덕분에 드러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람을 도구로 삼지 않는 ‘도덕경영’을 내세웠다고 한다.

실직자의 고통이나 죽음마저도 먼 메아리로 들리는 사회. 주위에 대한 배려보다는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걸 도리라고 여기는 요즘의 사회 풍조에 젊은 날 드러커가 받은 충격의 울림은 아주 절절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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