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아닌 체험이 돼버린 송편 빚기
생활이 아닌 체험이 돼버린 송편 빚기
  • 나정이 시민기자
  • 승인 2010.09.1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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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둘러앉아 빚는 모습 사라지고 떡집만 호황

▲ 갓 쪄낸 모싯잎 송편.
추석하면 보름달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 송편이다. 흔히 추석에 관한 책자나 영상미디어를 보면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서 정겹게 송편을 빚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송편을 빚는 한 장의 사진이나 짧은 영상은 우리들에게 향수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런 사진이나 영상이 향수를 불러내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추석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정보용이 되어버리거나, 떡집을 홍보하는 광고용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송편을 빚는 집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반면, 떡집은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서구 쌍촌동에서 김모(57)씨가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해마다 추석 즈음에 송편 빚기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서 시작한 송편 빚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좋아한다.
 
쌀을 익반죽해서 나누어주면 아이들이 송편을 빚는데,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때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이나 꽃을 빚기도 한다. 이렇게 빚어진 송편은 쪄서 간식으로 먹고, 세 개씩 비닐봉지 안에 넣어서 각자 집으로 가져간다.
 
송편 빚기 체험학습이 끝나면 어린이집 인터넷 홈페이지에 “바빠서 언제 송편 빚을 틈이 없었는데, 아이에게 좋은 체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송편을 샀는데, 우리애가 집에서 만들자고 하네요.”, “자기가 만들었다고 만지지도 못하게 해요.” 등의 학부모들의 후기가 올라온다고 했다.
 
아직 추석이 일주일 이상 남았는데도 방앗간 겸 떡집이 분주했다. 주문 받은 송편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미리 송편을 주문하는 것은 막상 추석이 눈앞으로 다가오면 송편 구하가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송편을 집에서 빚기보다는 떡집에서 구입하는 것이 추세다보니, 추석을 하루 앞두고 떡을 사러 가면 떡집들을 샅샅이 훑고 다녀도 구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전날도 쌀 한가마니 분량의 송편을 만들어서 서울로 보냈다는 떡집주인 양모(71)씨는 “송편을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추석 전날 쪄내면 막 한 것 같다.”며 “송편이 하나하나 손이 가다보니 만드는데 한계가 있어. 추석을 앞두고 이틀간이 젤 바뻐. 일손을 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자식들이 명절 쇠러오면 모두 엉겨 붙어서 죽도록 송편을 만들어. 대학교수고 뭐고 다 소용없어.”라며 웃었다.
 
떡집에서 송편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빚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기계를 이용하는 방법은, 반죽과 소를 각각 다른 투입구에 넣고 기계를 작동하면 소가 들어간 적당한 크기의 반죽이 둥근모양이 되어 나온다. 그것을 손으로 빚어 송편모양으로 만든다. 가격은 완전 수작업은 2kg(한 되)에 18,000원이고, 반 수작업은 16,000원이다. 
 
▲ 남광주시장 광장에서 새벽녘에 열리는 반짝시장에 나온 모시잎.
송편을 떡집에 맡기는 것이 요즘 추세라지만, 직접 빚는 집들도 있다. 남광주시장의 광장에서 오전 8시까지 열리는 반짝시장에는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송편을 만들 때 쓰는 모싯잎이 많이 나와 있었다. 모싯잎은 한 손에 잡힐 정도의 분량으로 묶여있었는데, 한 단에 2,000원이었다. 어느 정도의 모싯잎을 넣어야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대략 한 단이면 2kg정도의 송편을 빚을 수 있다고 했다.
 
모싯잎을 구입한 한 손님은 가족들과 함께 송편을 빚느냐는 질문에 “요즘 애들은 송편 만드는 거 귀찮아해요. 처음 몇 개쯤은 재미있어 하다가도 금방 싫증나서 손 털고 제 방으로 도망가 버려요. 남편은 아예 모른척하고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추석이 가을걷이랑 맞물려서 송편 만들 새도 없이 일만 했어요. 어린 마음에 송편 만들어 먹는 집이 얼마나 부럽던지…. 그때 생각이 나서 집에서 송편을 만들어요.”라며 걸음을 옮겼다.
 
소가족, 맞벌이 등 시대가 변하고는 있다지만, 마치 외국인들의 우리 문화 체험처럼 고유의 음식들을 생활 속이 아닌 체험을 통해서 배워야할 때가 오지 않을까싶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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