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 잡아야 비로소 임금 발생”
“운전대 잡아야 비로소 임금 발생”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8.22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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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8시간·월20일 만근 ‘공염불’…연장근무 다반사
배차시간·알짜노선 배정 미끼 운수노동자 통제·관리

금호고속 운수노동자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지난 64년 무분규가 말해주듯 사측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감지덕지(感之德之)’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뭇매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지난 64년 동안 구조화된 ‘장시간 노동’과 ‘임금착취’의 굴레가 마침내 임계점에서 폭발하고 만 것이다.

금호산업(주) 고속사업부가 ‘최저임금법’ 위반시비에 휘말렸다. 노동시간에 관계없이 운행거리(㎞)에 따라 수당을 산정하는 독특한 방식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아야만 비로소 임금이 발생하는 ‘이상한 셈법’으로 사실상 최저임금제를 무력화시키는 편법이다.

금호고속 운수노동자들이 20여일 넘게 사측의 ‘최저임금 위반’과 ‘장시간 노동’의 개선을 요구하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과반수를 훌쩍 뛰어넘는 400여명의 운수노동자들이 지난 35년 동안 사측의 앵무새 역할을 해왔던 ‘어용노조’와 결별을 선언했다. 이들은 민주노총 운수노조 금호고속지회를 결성한 뒤 사측에 노조인정과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금호고속지회에 따르면 운수노동자들이 받는 운송거리(㎞)당 수당은 고속도로 45.14원, 지방 국도 48.14원이다. 월 1만㎞ 이상을 운행해야 45만1400원에서 48만1400원의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시간 근로를 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거리를 달렸는가가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기시간이나 휴무시간은 임금산정과 전혀 무관한 근로 외 시간으로 간주된다.

입사 1년차(50호봉)의 경우 한 달 동안 고속도로 1만㎞를 달려야 기본급 56만800원에 승무수당(㎞당 운행수당) 45만1400원 등 101만2200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운행거리 1㎞당 지급되는 월 자율관리수당과 월차수당, 연장·야간·주휴·휴일근무 등 법정수당을 더한 값이 한 달 임금이다.

그러다보니 하루 8시간 근무와 월 만근일 수 20일 보장은 ‘공염불’이 돼버렸다. 주 40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하지 않으면 현재의 급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에서다. 하루 평균 16~18시간 장시간 근로와 9~10일, 많게는 13~14일간 운행 뒤 하루 휴무가 일상이 돼버렸다. 이렇게 월 27~28일 꼬박 일해 봐야 고작 149만 원 정도의 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을 입 밖에 꺼냈다간 즉시 해고감이다. 실제로 선종오 지회장은 지난달 16일 ‘주당 6일 근로와 하루 휴무’를 요구하다 ‘배차거부’를 빌미로 길거리로 내몰렸다.

또 임금과 운행거리가 연동되다보니 사측의 강제·임의배차도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사측과 노동조합 역시 배차시간과 노선배정을 미끼로 운수노동자들을 통제·관리해오고 있다. 장거리 알짜노선에는 측근들을 배정하고 눈엣가시 같은 조합원들은 근거리 일반노선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금호고속지회는 장거리 고속버스 운수노동자와 일반직행 고속 운수노동자의 임금격차가 30%나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게다가 임금이 2년째 꽁꽁 묶여 있는 것도 모자라 7년 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사측과 기존 노조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키웠다.

뿐만 아니다. 사측의 비인간적 처사에서 느낀 인간적 모멸감과 노조의 무력함도 불만을 키웠다. 특히 추석과 설날 등 명절과 휴가 특송 기간 동안 느끼는 자괴감은 자못 컸다. 남들은 모두 고향을 찾는데 추가수당도 없이 ‘빵과 우유’만 주면서 운수에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량수리를 받는 동안에는 자비로 식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간적 비애감을 토로했다. 일(운전)을 해야만 식사가 제공된다는 ‘사측의 방침’이 철칙이 돼버린 탓이다. 심지어 배차를 받은 운수노동자조차 직접 식권을 요구하지 않으면 지급하지 않는다는 푸념도 이어졌다.

직무교육에 대한 원성도 자자했다. 식권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 직무교육을 오전 9시30분에 시작해 11시30분에 끝낸다는 것이다. 휴일 근로교육도 마찬가지. 명색이 특근이지만 수당은 차치하고라도 식권 대신 빵과 우유로 대체하고 있어서다.

숙박시설에 이르러서는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곰팡이가 필 정도로 불결하기 그지없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측은 문제해결을 위한 단체교섭은 외면하면서 조합원 면담을 통해 민주노총 탈퇴공작을 벌이고 있고 광천터미널 인근에 집회신고서를 접수하는 편법으로 일관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게다가 조합원 가족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워크아웃’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일부 평화저해세력’ 운운해 가족들의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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