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같은 세월 속에 묻힌 우리들의 하일몽(夏日夢)이여!
강 같은 세월 속에 묻힌 우리들의 하일몽(夏日夢)이여!
  • 이수행 시민기자
  • 승인 2010.07.2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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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영산강 기행<6>

▲ 학교는 오리길 남짓인데 처음부터 학교까지 강과 함께 동행이다.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하여 ‘구부나루’ 또는 ‘구비나루’라고 불렀던 구진포는 유년의 추억이 가득한 마음 속 실낙원이다.
필자가 살았던 영산강 포구인 구진포는 1970년도 중반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 올려야 했고, 저녁 무렵엔 검게 그을린 호롱불 유리를 닦는 몫은 언제나 어린 내 또래들의 몫이었다.

어쩌다 유리가 깨지거나 금이 갈 경우에는 어머니의 지청구와 함께 부지깽이세례를 받기 일쑤였다. 다음 장날까지 호롱불 유리를 사오기 전까지는, 매일 깨지거나 금이 간 호롱불을 거름부대 같은 종이에다 밥풀을 짓이겨 땜질을 해 호롱불을 켜 올려놓아야 했다. 

학교는 오리길 남짓인데 처음부터 학교까지 강과 함께 동행이다. 학교 가는 길목엔 사시사철 요깃거리가 즐비했다. 봄날에 삐비, 여름엔 딸기와 미영꽃, 오디, 가을엔 산에 조금만 오르면 붉디붉은 파리똥 열매가 지천이었다. 특히 삐비나 야생딸기가 한창일 때는 동무들을 부추겨 단체로 학교를 빼먹는 경우도 있었다.
저학년일 때는 마을에서 개근상을 받아 친구가 하나도 없었지만, 누구 하나 억울해 하는 동무는 없었다. 구진포에서 회진포구로 이어지는 강 길이 만들어 준 유년의 아름다운 책갈피가 아직도 선연하다.

그 친구들이 내일모레면 나이가 50줄이라니,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다. 강은 시나브로 삽날에 찢겨나갈 처지고 내 가장 사랑했던 불알친구는 아직 혼자인 채 강물처럼 여위어 있다.

학교는 폐교가 된 지 오래되었고 그 자리엔 현대식 천연염색관이 들어서 애써 우리들의 함성이 밴 학교를 지워내고 있다. 비단을 물들인들 무슨 소용이랴, 걸어주고 휘감아 줄 색시가 없는데 말이다. 10여 년 전 홀로 찾아 들었다가 차마 그 친구를 부르지 못하고 대문만 기웃거리다 돌아섰던 기억이 얼마나 나를 오랫동안 뒤척이게 했는지….   

싯누런 원피스를 차려 입은 살 부푼 색시들마냥 뚱딴지꽃
사방디서 흐드러지는디요
각시 삼고 싶던 동네 큰애기들 날파람처럼 떠나버린
빈 들판 상투도 못 튼 허수아비로 붙박혀 내일모레면 귀밑
서늘해진다는 마흔 줄인디요 하, 인자는 헛다리품만 같은 살속인디요
그래도 문득문득 삽날 같은 힘발 불끈거리기 일쑤인디요
홀로 새참 물린 당산나무 그늘 막걸리 한 사발 눈 붉어지면서
그 옛날 밤 마실 가다 뒤안에서 목간하던 터질듯한
옥순이 훔쳐보다 두 눈에 불 켜지던 날 아슴헌디요
나도 모르게 하초 나른허게 풀어지면서 든 들잠 속으로
옥순이 그 년 영락없이 속곳 풀면서 안기는디요
해년마다 보리밭은 육실허게 출렁이는디요
                              -이수행 시‘夏日夢’ 전문-

      
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 불알친구는 아직 혼자다. 뚱딴지 꽃 같던 예의 새색시들도 인생이란 노정의 어디 메쯤에서 머리에 하얀 파꽃을 앉혀가고 있을 것이다.

하여, 엊그제 서울 행장 길에서 마음으로부터 길이 끊긴 친구를 만난 후 받았던 상처만큼이나 쓸쓸한 지천명. 그 나이처럼 들길을 걸어가는 그 뒷모습이 떠올라 처연한 슬픔이 밀려오는 요즈음. 문득 노을이 더 붉게 타고 있음을 마음이 먼저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쉽고 절실하게 그 친구가 보고 싶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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