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춰도 이 기쁨 다 감추지 못할 것”
“춤을 춰도 이 기쁨 다 감추지 못할 것”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7.19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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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쯔비시, 근로정신대 문제 관련 협의의 장 마련 동의
시민모임, 새 역사 진전…협상 테이블 조기 구성 촉구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미쯔비시 중공업이 65년 만에 한국과 일본의 양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거듭된 사죄와 배상요구에 ‘협상수용’ 의사를 밝힌 것.

▲ 미쯔비시 중공업이 해방 65년 만에‘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해 ‘협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동의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피해자·유족들이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환영의사를 밝혔다. <사진제공=시민모임>
나고야 미쯔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 지원회)의 다카하시 마코도 회장은 지난 14일 미쯔비시가 보낸 한 장의 공문을 받았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해 ‘협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동의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3년 동안 ‘캄캄한 암흑’에서 비로소 ‘희망의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카하시 회장은 그 즉시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김희용·이하 시민모임)에 이 소식을 알렸다. 시민모임은 일본발 낭보에 “대단한 역사를 이뤄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선호 시민모임 고문은 “모든 것이 법정에서 끝나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나고야 지원회와 시민모임의 헌신적인 투쟁으로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마치 잃었던 주권을 다시 찾아온 느낌”이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김희용 시민모임 대표도 “근로정신대 문제의 단초가 풀리면 여타 일제강점 하 피해문제도 하나하나 해결될 것”이라며 “단순한 금전적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평가와 가치의 맥락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상갑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지부장은 “근로정신대 사건은 역사적 심판의 문제로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며 “향후 싸움의 주도권을 쥐고 과거 100년의 잘못된 한일 관계사를 정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못 박았다.

다음날인 15일 오전 미쯔비시 자동차 광주전시장 앞.

지난밤 소식이 가져다 준 감동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듯 흥분과 설렘으로 들뜬 열기 속에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춤을 춰도 이 기쁨을 다 감추지 못할 것이다.”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광주유족회장(91)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 자신이 일제피해자 유족의 한명이면서 지난 88년부터 과거사 문제해결에 앞장서왔던 터라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이 회장은 1943년 결혼 2년 만에 남편을 징용 보낸 뒤 67년을 고통과 분노, 슬픔으로 인고의 나날을 살았다. 꼭 살아오겠다던 남편은 3년 만에 전사통지서 한 장으로 돌아왔다. 당시 생후 8개월이었던 아들은 이제 67살 할아버지가 됐다.

이 회장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조상 때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무시당하고 발길에 채이고 했는지 불쌍하고 슬펐다”며 “하지만 광주시민과 나고야 지원회의 노력으로 이제 문제해결의 서광이 비친 것에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마지막 바람은 야스쿠니에 합사된 남편의 유골을 분골해 고국에 안장하는 것이다.

▲ 시민모임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쯔비시의 결단은 역사의 순리이자 일제피해자들의 정의회복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환영하면서도 “정작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정부가 65년 동안 일제피해자들의 고통을 회피하고 있다”고 일본정부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이날 사망 1주기를 맞은 김혜옥 할머니의 아들 안호걸(45)씨는 일단 미쯔비시 중공업의 진일보한 태도에 대해 긍정평가 했다.

안씨는 “향후 협상과정에서 과거 진실들이 제대로 규명되고 피해자의 인권이 회복돼야 한다”며 “미쯔비시 중공업이 반드시 사과하고 피해에 걸 맞는 배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일제피해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와 설움을 느낀다”며 “한일정부가 근로정신대뿐만 아니라 징용자, 위안부 할머니 문제 등의 해결에 적극 나서 진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씨는 이어 “어머니 생전에 이 모습을 보셨다면 조금이라도 한이 풀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1주기에 맞춰 좋은 소식을 듣게 돼 기쁘다”며 “피해원고들과 나고야 지원회, 광주시민모임의 진심어린 노력에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근로정신대 싸움의 상징적 존재로 떠오른 양금덕 할머니(82)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하루도 빠짐없이 1인 시위에 참여해준 시민모임과 서명운동을 해 준 국민들의 덕택”이라며 “만세 삼창이라도 부르고 싶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또 “미쯔비시가 협상에 나선다고 하니 이제껏 받은 고통이 싹 사라진 느낌”이라며 “이제 밥은 다 먹었고 앞으로 물만 마실 일만 남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희용 대표도 “시민모임의 200여일 가까운 1인 시위와 광주시민들의 1, 2차 서명운동 참여 등 노력이 모여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이제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만드는 몇 개의 전투 중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한 만큼 여세를 몰아 평화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틀을 만들자”고 기염을 토했다.

김 대표는 이어 “근로정신대 피해원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요구하겠다”며 “피해할머니들의 65년 동안 한의 눈물이 춤이 되고 빛고을 광주에서 정의를 위한 싸움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자”고 역설했다.

시민모임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쯔비시의 결단은 역사의 순리이자 일제피해자들의 정의회복을 위한 첫 걸음”이라고 환영하면서도 “정작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정부가 65년 동안 일제피해자들의 고통을 회피하고 있다”고 일본정부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또 “이명박 정부가 후생연금 99엔 지급의 국가적 치욕에는 침묵하고 최소 4조원 대에 달하는 징용피해자들의 공탁금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며 “일제피해자들이 내나라, 내 정부를 두고 일본정부의 호의와 선처에 기대도록 하는 것은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모임은 이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협상테이블을 구성하라”고 촉구하고 “협상개시 시점에 맞춰 반 미쯔비시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지만 상황 추이에 따라 언제라도 재개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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