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뒷산에 굴을 21개나 파놓았어요!”
“마을 뒷산에 굴을 21개나 파놓았어요!”
  • 나정이 시민기자
  • 승인 2010.07.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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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아이 태윤이, 은진이의 시골생활 적응기
자연 속 내 아이 교육, 자신감 넘치는 아이로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에 있는 동초등학교로 들어서자, 시원스레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연못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으로 아이들이 아담한 교정에 맑은 웃음을 뿌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채 그대로 자연이 되어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김근영(35)씨가 도심에서 도농지역인 장등동으로 이사한 이유를 보는 것 같았다.

4년 전, 근영씨는 두 아이 노태윤(초등학교6)과 은진(초등학교5)의 교육을 위해서 장등동으로 이사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매사를 자신없어하는 은진이에게 자연이라는 환경을 주고 싶어서 시골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김용택 시인의 수업방식으로 유명해진 전북 임실에 있는 덕치초등학교로 옮길까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유명세를 좇는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거스르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 공부방 아이들의 놀이터.

학교수업이 끝나자, 태윤이와 은진이는 마을에 있는 공부방으로 갔다. 아이들의 방과 후를 책임지고 있는 공부방은 성적보다는 인성교육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으로 짜여있다. 학원이라고는 태윤이가 5학년 겨울방학 때 한 달간 다닌 것이 전부이지만, 근영씨는 걱정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을 어귀에서 마주친 마을어르신이 인사를 건네는 태윤이와 은진이에게 “이 녀석들, 또 어디다가 굴 파놓은 건 아니지!”라고 말했다. 절대 아니라는 듯 다소 호들갑스럽게 고개를 흔들어대는 두 아이를 바라보는 마을어르신의 눈가가 부드러웠다.

공부방 아이들과 떼를 지어 다니며 마을 뒷산 여기저기에 굴을 파놓았는데, 모두 21개나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파놓은 굴들은 마을의 기가 빠져나간다는 믿음 때문에 지금은 다 메워졌다.

태윤이와 은진이는 바로 공부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공부방 뒤쪽에 있는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제법 가파른 길을 다람쥐처럼 빠르게 올라가는 태윤이를,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절었다는 은진이도 가볍게 따라 올라갔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 엄마와 함께 그네를 타고 노는 태윤이와 은진이.

이사 후 처음 2년 동안, 근영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날마다 2시간 30여분 정도 걸리는 4수원지까지 산책을 했다. 자연을 배우고 느끼면서 천천히 걸었다고는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산책길이었다. 때로는 집으로 돌아갈 힘마저 남아있지 않아서 남편더러 데리러 오라고도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자, 아이들이 놀라울 만큼 건강해졌다.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아이들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부방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이며 놀이터인 언덕배기에는 닭장과 텃밭이 조성되어 있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그네와 매달려 놀 수 있는 줄이 매어져있었다. 줄을 보자, 은진이가 마치 타잔이라도 된 듯 능숙하게 줄을 탔다. 
 
비 오는 날, 아이들과 함께 우산도 없이 맨발로 걸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근영씨는 “마을 앞에 작은 개울이 있는데, 농토로 가는 다리가 놓여있어요. 비가 많이 오면 다리 위로 물이 넘실넘실 넘치거든요.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물안경을 들고 다리로 뛰어가요. 물안경을 쓰고, 돌돌 만 쑥으로 귀를 막은 채 다리 위에 누우면 물결이 온 몸을 쓰다듬어요. 가만히 누워서 물결을 느끼고 있으면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근영씨와 아이들에게 자연이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스며들어 동화되어야만 하는 존재인 듯싶었다.   
 

▲ 텃밭에서 자라는 토마토를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

요즘처럼 물질이 판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시골생활을 하기로 한 것은 부모들의 성향만을 고려한 편향된 선택은 아니냐는 질문에, 근영씨는 자신이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번은 아이들이 농사를 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을 때 도시에서 산다고 해도 말릴 생각이 없듯이,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말리지 않겠다고 했다며 넉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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