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한솥밥 노동자 의리 ‘두 동강’
10년 한솥밥 노동자 의리 ‘두 동강’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7.07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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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갈등’ 빌미 제공 11명 중 7명 길거리로
‘부당해고·정당한 계약해지’노사주장 엇갈려

10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던 화물운수노동자들이 서로 척을 졌다. 모임 내부갈등으로 제대로 용 한번 쓰지 못하고 11명의 노동자 가운데 7명이 해고된 것이다.

▲ 인홍상사에서 해고된 화물운수노동자들이 화물차량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해고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광산구 도천동 하남산단 내에 위치한 인홍상사(주) 광주지점이 노동자들을 무더기 해고해 말썽을 빚고 있다. 사측은 운송계약 합의서 위반에 따른 정당한 계약해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해고자들은 ‘부당해고’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 사이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는 아교역할을 했던 상조모임 한마음회가 사실상 와해됐다. 이들은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현재까지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상조회가 노동조합을 대신하고 있다.

사측은 눈엣가시를 뽑아낸 것 같아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시퍼렇게 날을 벼리고 있다.

지난 5일 하남산단 내 10번로에 위치한 인홍상사 광주지점 앞. 비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해고자 농성장과 사업장이 어색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작업장 안에서 집게차가 쌓인 고철을 처리하느라 부산을 떠는 동안 담장 밖 화물연대 차량에서는 쉴 새 없이 노동가요가 흘러나왔다.

작업장 안팎의 대비되는 풍경을 바라보는 해고자들의 눈에는 핏발이 서렸다.

도대체 인홍상사에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인홍상사는 인천에 본사를 두고 있고 10여 년 전 광주에 지점을 설치했다. 광주지점은 포항에 있는 현대제철에 고철을 납품하고 있다. 인홍상사 광주지점은 한때 30여대의 고정화물차를 부릴 정도로 잘나가는 업체였다.

사측과 한마음회는 지난 2004년 8월 상호합의하에 ‘고철 상차 운송계약’을 맺었다. 사측이 한마음회에 고철운반을 위한 배차권과 상하 운송권 등 권한 일체를 일임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성과였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 화물연대 투쟁에서 운명을 달리한 고 박종태 열사가 있었다.

그때부터 인홍상사는 지역 동종타사보다 임금과 근로조건 등에서 한발 앞서 나갔다. 과거 먼저 도착한 차량 순으로 배차하던 관행을 고정 순번으로 바꿨다. 배차경쟁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와 노동자간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한마음회의 성과는 타 사업장에 큰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져왔다. 그럴수록 사측에겐 한마음회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고철물량이 평소의 절반정도로 급감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한때 33대에 이르던 고정화물차 수가 11대까지 대폭 줄어든 것이다. 해고자들은 “새로 부임한 부사장이 눈앞의 영업이익에만 급급해 운송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정리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측으로선 ‘고정화물차’를 쓰는 대신 물량변동에 대처하기 쉽고 싼 값으로 ‘남의 차’를 부리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 인홍상사 광주지점은 포항에 소재한 현대제철에 고철을 납품하는 업체다.
이민호 화물연대 지회장은 “사측이 한마음회를 와해시키려고 회장과 총무를 앞세워 노노싸움을 부추기는 꼼수를 썼다”며 “사측이 정작 이번 계약해지 사태를 불러온 회장과 총무는 감싸고돌면서 나머지 회원들에게 덤터기를 씌워 해고를 단행했다”고 격앙했다.

사측이 지난달 25일 ‘고철 운송계약 합의서 위반’ 당사자로 한마음회를 지목하고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한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사측은 이날 한마음회에 보낸 내용증명 우편물에서 “귀회에 지속적으로 원활한 배차와 상차 운송을 요청했으나 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합의서 조건을 위반했다”며 “귀회와 합의했던 상차운송계약은 6월30일부터 모든 효력이 소멸된다”고 통지했다.

또 “고철시황 단가가 계속 하락하는 시점에서 운송지연으로 납품물량이 감소돼 재고에 따른 자금 부담이 늘고 거래처와 물량처리 등에 문제가 생겨 영업활동 위축과 영업 손실 등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그 이유를 적시했다.

한마음회 회원들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 지회장은 “한마음회 회장과 총무가 눈 밖에 난 회원들에게 광주 상차 일정도 전달하지 않고 포항에서 의뢰 물량이 들어와도 차량이 없다고 속여 다른 사람에게 배정했다”며 “그런데도 사측이 한마음회 전체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올 3월 한마음회 신임 집행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해고자 김현모씨는 “전임 집행부 때까지만 해도 매월 정례회의를 열어 모든 문제를 결정하고 사측과 협의 내용을 모든 회원들에게 통보했다”며 “그런데 현 집행부는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운반비, 배차 등의 문제를 사측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이어 “이전에도 회원들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있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며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회장과 총무의 책임은 나몰라하면서 애꿎은 회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지회장도 “화물연대 지회장 자리를 맡으면서 한마음회 회장 자리를 물려줬는데 신임 회장과 총무가 협박을 받았는지 뇌물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사측의 입장만 대변했다”고 지적했다.

해고자 최상순씨는 “운임을 올려달라거나 다른 요구조건을 내건 것도 아닌데 무조건 해고를 한 것은 한마음회 조직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며 “사주가 고정차량을 없애고 물량에 따라 외부차량을 저가로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또 “광주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홍상사가 지사를 설립할 때 거래처까지 뚫어준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는데도 어제 부사장이 막말을 하며 인신공격까지 했다”고 허탈해했다.

▲ 화물연대 방송차량
해고자들은 지난달 17일 이후 상차물량을 배정받지 못하다가 30일자로 계약해지 된 상태다.

이 지회장은 “당초 사측에서 계약만료를 해고이유로 제시하다가 지난 5일 화물연대 운반비가 비싸 너희들과 더 이상 같이 일하지 못하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며 “해고를 통보한 뒤 사업장 주변 집회신고까지 선점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회장은 이어 “지금까지는 벌어놓은 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내달부터는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며 “전국화물연대와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연대해 반드시 해고철회를 관철시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에 대해 사측관계자는 “한마음회가 고철가격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제대로 상차도 않으면서 외부차량 이용을 막겠다고 해 회사가 정상적 영업활동을 하기 어려웠다”며 “지속적으로 상차와 운행을 요구했는데도 책임을 지지 않아 이번에 정리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외부차량에도 똑같은 운송비를 주고 있다”고 말하고 “회장, 총무를 포함한 4명은 고철가격이 떨어지는 등 회사가 어려울 때 발 빠르게 대응해줘 계속 일을 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추연식 한마음회 회장도 “한마음회 회원들이 고철단가가 내려가도 상차를 중단하고 화물연대 집회에만 참여했다”며 “집행부가 회사에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회장과 총무 몰래 임시총회를 열어 불신임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 회장은 이어 “총무가 회원들에게 배차를 받으라고 했지만 임의로 배차를 받고 포항 오더도 자기 맘대로 잡았다”며 “사측에 우리허락 없이 배차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자 쿠데타로 뒤통수를 쳤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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