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내 가슴은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6.27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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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모임, 한일협정 문서공개·과거사문제 해결 촉구
일본법원, 문서공개 기각판결…관련단체, 즉각 항소

지난 22일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청사 2층. 공교롭게도 이날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지 정확히 45년 되던 날이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김희용·이하 시민모임) 일본방문단은 출국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정부에 ‘일제피해자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지난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이 번번이 일제피해자의 발목을 잡고 한일 과거사문제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2일 일본 출국에 앞서 김포공항 국제선 2층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피해자 문제해결과 한일회담 문서 공개를 촉구했다.
한일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직접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라는 요구다.

방문단은 이날 일본정부와 미쯔비시 중공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13만4162명의 서명용지를 들고 일본을 방문하는 길이었다. 시민모임은 지난해 10월15일 공식서명운동에 들어가 지난 15일까지 전국에서 13만여 명이 넘는 국민들의 서명참여를 이끌어냈다. 

시민모임은 “일본정부가 한일협정 체결로 식민지배 사죄와 징용피해자 배상이 모두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 최고재판소 역시 ‘개인청구권은 남아있다’고 하면서도 기각판정을 내렸다”며 “일본정부가 한일협정을 과거사 문제의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청구권 협정 문서에는 식민지배에 대한 단 한마디의 사죄문구도 없고 한국정부에 제공했다는 무상 3억불은 청구권과 전혀 무관한 경제협력자금일 뿐”이라며 “일본정부가 정작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모임은 이어 “일본정부는 지금이라도 외무성이 보관하고 있는 한일회담 관련문서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며 “해방이후 65년 동안 국책은행인 일본은행에 보관 중인 최소 4조원 대에 이르는 일제징용 노무자들의 공탁금을 즉시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정부의 책임도 추궁했다.

시민모임은 “99엔의 국가적 치욕에도 손을 놓고 징용피해자들의 미불임금이 65년 동안 일본에 잠자고 있어도 찾아올 생각조차 없다”며 “한국정부의 태도는 피해자들이 어서 죽기를 바라는 일본정부의 태도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민모임은 이어 “일제피해자들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며 “정부와 국회는 일제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지금이라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선호 시민모임 고문도 “일본최고재판소가 근로정신대 소송에서 최종 기각판결을 내렸지만 법적 해결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문제는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판결 취지”며 “일본정부와 미쯔비시가 즉각 사죄·배상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지난해 일본정부가 근로정신대 피해 원고들에게 전달한 99엔은 국가와 국민을 모독한 행위”라며 “다시는 경술국치와 같은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라나는 세대들이 과거 역사를 잊지 말고 반드시 되돌아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금덕 피해 할머니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밤낮으로 눈비를 맞아가며 200일이 넘도록 1인 시위와 서명운동을 했다”며 “이제껏 눈물과 고통 속에 살았는데 시민모임 때문에 위로받고 따뜻하게 살 수 있게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양 할머니는 이어 “하지만 가슴은 아직 해방이 되지 않았다”며 “13만4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일본에 가는 만큼 죽기 살기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국언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일본정부가 지난 3월 일제징용자들의 공탁금 명부를 건네 줬는데 배상자 수만 수십만 명에 이른다”며 “99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징용피해자들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간 나오토 신임 일본총리가 후생대신 시절 근로정신대 문제해결의 첫 물꼬를 텄다”며 “이제 총리가 됐으니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기대감을 내보였다.

한편, 도쿄지방재판소는 지난 23일 한일협정 문서공개 청구 3차 소송에서도 기각판결을 내렸다. 일본의 ‘일한회담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은 지난해 12월17일 일본정부가 2007년 5월까지 추가 공개한 6만여 쪽의 문서 가운데 먹칠 처리된 25%의 문서공개를 요구하며 3차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 모임 이양수 사무국장은 23일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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