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교수 죽음 내몬 ‘우골탑’
비정규교수 죽음 내몬 ‘우골탑’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5.31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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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채용 과정 뭉칫돈 오가고 논문대필 만연
조선대 영문과 서정민 교수 스스로 목숨 끊어

5월의 끝자락.

한 비정규교수가 ‘꽃잎 지듯’ 한 많은 인생을 서둘러 마감했다. 교수의 꿈을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10년 세월 ‘보따리 장사’를 접은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집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서정민(45) 조선대학교 영문과 비정규교수가 지난 25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수임용 탈락’이 화근이었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더 깊고 은밀한 곳에서 ‘독버섯’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 지난 31일 조선대를 찾았을 때는 가로 펼침 막 몇 장만이 고인의 죽음을 부음하고 있었다. 인문대 입구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다 타버린 향의 재와 소주 한 병, 평소에 고인이 좋아했을 법한 음료수 한 캔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생활고를 감수하면서까지 꿈꿔왔던 교수자리를 ‘금품’으로 사고팔고 사제지간이 주종관계에 속박당한 대학의 현실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교수채용을 미끼로 한 금품요구와 스승의 파렴치한 논문대필 등 ‘우골탑(牛骨塔)’의 추악한 전모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경찰은 ‘단순변사’로 사건을 덮으려했지만 그러기엔 주검이 너무 억울했던가 보다. 가족들이 그의 승용차에서 발견한 A₄용지 다섯 쪽짜리 유서를 공개한 것.

그는 유서에서 ‘한국사회는 썩었다’고 절망적으로 단언했다. 교수채용 과정에 수억 원의 ‘뭉칫돈’이 오가고 논문대필이 일상화 될 정도로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서에는 ‘교수 한 마리(한자리)가 1억5천만 원, 3억 원’이라는 구체적 액수까지 적시됐다. ‘2년 전 전남 모 대학에서 6천만 원, 두 달 전 경기 한 사립대에서 1억 원을 요구받았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뿐만 아니다. 학과 교수들의 논문대필 사실도 털어놨다. 같은 과 교수와 함께 쓴 논문이 대략 25편, 교수 제자를 위해 쓴 박사논문 1편, 한국학술진흥재단 논문 1편, 석사논문 4편, 학술진흥재단 발표논문 4편 등 대략 54편의 논문을 썼다고 했다.

그는 대필 논문에 버젓이 이름 세자만 올려놓은 교수가 ‘법정투쟁’을 통해 처벌받기를 원했다. 또 ‘학교 측에서 내 쫓으려 했다’며 자신의 죽음을 ‘스트레스성 자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간강사를 그대로 두면 안 된다’며 ‘교수임용 비리 등에 대한 수사의뢰’로 ‘한풀이’를 부탁했다.

지난 31일 조선대를 찾았을 때는 가로 펼침 막 몇 장만이 고인의 죽음을 부음하고 있었다. 인문대 입구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다 타버린 향의 재와 소주 한 병, 평소에 고인이 좋아했을 법한 음료수 한 캔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시간강사는 죽어서도 제대로 스승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 보다. 영정 속 고인은 화를 냄직도 한데 입을 꽉 다문 채 무표정이었다. 지나가는 학생들도 무덤덤하긴 매한가지. 화장장에서 연기와 한 줌 재로 변한 한 비정규교수의 죽음은 5월의 다사로운 햇살 아래서 그렇게 쉽게 잊혀 져 가고 있었다.

누군가 방명록에 쓴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길 바랍니다’라는 글귀가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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