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그가 있어 더욱 빛난 ‘5·18’
윤상원, 그가 있어 더욱 빛난 ‘5·18’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5.23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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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다카하시, 올 4월말 일어판 윤상원 평전 출판
“5·18 역사와 탁월한 지도자 가진 한국 역사 부러워”

▲ 다카하시 쿠니슈케씨.
“윤상원 열사가 없었다면 광주의 5·18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윤상원 열사 평전을 일본어로 번역한 다카하시 쿠니슈케(72)씨가 지난 20일 광주를 찾았다.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가 마련한 ‘들불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다카하시씨는 지난달 30일 일본에서 윤상원 평전을 펴냈다. 지난해 5월 번역에 들어가 1년 남짓 만에 거둔 개가다.

그는 “예전부터 광주 5·18에 관심이 많았지만 윤상원과 들불열사에 대해서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며 “일본사람들 가운데 5·18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밝혔다.

그런 그가 잘 알지도 못하는 ‘윤상원 평전’ 작업에 뛰어든 건 순전히 ‘직업정신’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1961년부터 1998년 퇴직할 때까지 37년 동안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윤상원 평전 번역도 작심하고 의도했던 것이라기보다 우연한 계기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지난해 5월 광주를 방문했던 한 지인이 윤상원 평전을 선물로 가져왔다”며 “그 분이 일본어로 번역해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돼 번역작업에 뛰어들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번역이라는 작업이 순전히 각오 하나만으로 되지는 않을 터. 다행히 15년 전부터 한국어 공부를 꾸준히 해왔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한국어 테이프를 들으며 회화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도통 실력이 늘지 않고 있다”며 “특히 지난 1년 동안 번역작업에만 매달리다보니 오히려 회화 능력이 예전보다 퇴보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떠는 여유까지 보였다.

번역작업은 ‘광주 5·18’과 ‘윤상원·들불열사’에 대한 배움과 이해를 더욱 심화시켜가는 자기학습의 과정이었다. 

그는 “윤상원과 들불열사가 없었다면 광주의 5·18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 “5·18이라는 저항의 역사와 윤상원이라는 탁월한 지도자를 가진 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많이 부러웠다”고도 했다.

일본역사에도 윤상원 열사와 비슷한 지도자가 있었는지 물었다. 뭔가를 한참 골똘히 생각하던 그에게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그가 찾아낸 해답은 에도시대(1603~1867)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소환한 이름 없는 농민 운동가였다.

그는 “일본 에도시대 당시 농민투쟁 지도자 가운데 윤상원 열사와 유사한 인물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그런 인물을 찾아볼 수 없다”며 “일본에 5·18과 같은 저항의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1980년 5·18 당시 아사히신문 동료기자의 광주취재에 얽힌 일화도 공개했다.
그는 “1980년 5·18 당시 일본 언론 중 아사히신문이 유일하게 광주현장에 있었다”며 “강원도 속초에 있던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5·18이 발생하자 즉각 광주에 내려갔다”고 밝혔다.

또 “기자들이 21일까지 광주에 체류하면서 차량시위 등 여러 가지를 기록하고 보도한 뒤 서울로 올라왔다가 계엄군이 27일 도청을 진압한다는 정보를 듣고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광주에 내려왔지만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 2008년 호남대학교에서 열린 워크숍에 당시 취재·사진기자와 함께 참석해 그 같은 사실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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