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효정 작가, ‘시나리오라는 글쓰기와 주제’
<인디안 썸머(2001)>의 작가 겸 감독인 노효정 씨가 생생한 현장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 지난달 28일 전남대를 찾았다.
그는 ‘산업 예술’로서 영화와 시나리오의 관계를 정립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균적으로 2시간짜리 영화 한편을 만드는 데 60억 내지는 70억 정도가 들고, 시나리오는 70페이지 정도가 된다”며 “나는 데뷔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 ‘네 글 1페이지가 1억 짜리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영화에 투자되는 막대한 비용, 역으로 영화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지불하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산업 예술’로서의 영화는 예술성을 뛰어 넘어선 즐거움 제공의 책임도 크다는 것.
작가의 말에 의하면 해마다 국내에서 개봉되는 130편 내외의 영화 중 손익 분기점을 넘는 영화는 열편 남짓이라고 한다. 관객들의 잣대와 평가는 냉혹하기만 한 것일까.
노효정 작가가 그에 대한 이유와 해답을 찾았다.
작가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로 첫째,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사건을 훔쳐보려는 ‘관음’의 욕구가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는 웬만한 가정집에서는 보기 힘든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스템을 통한 기술적인 매력적이 있다는 것. 세 번째는 감정이입을 통한 대리 만족적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작가는 해답으로 “인간 본능의 노골적인 감정을 잘 살린 영화이면서, 영상미와 음향을 잘 살리고, 정의가 승리하고 밝고 아름다운 미래 지향적 메시지가 포함된 이 세 원리만 갖춘다면 흥행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또 노 작가는 “천재적인 시인이나 소설가는 있을 수 있지만, 천재적인 시나리오 작가는 없다”면서 “영화<살인의 추억>은 3년 2개월의 작업 끝에 만들어진 시나리오이고, 영화<범죄의 재구성>은 2년 9개월이나 걸렸다”고 예를 들었다.
작가는 “시나리오는 단번에 쉽게 쓰여 지는 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며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서 느꼈던 감정이나 보았던 것들을 모아 기록하고 덧붙이고 고치는 모든 과정이 시나리오 글쓰기의 첫걸음이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한 영화 <로키>는 부인이 벌어온 주급 50달러로 일주일 동안 먹을 빵을 사는 대신 길가에 붙은 권투 경기(무하마드 알리 대 척 웨프너) 포스터를 보고 티켓과 맞바꿔 탄생한 영화이다. 당대 최고의 권투 선수였던 무하마드 알리와 15라운드까지 버틴 척 웨프너(결국 판정승으로 패하긴 했지만)의 집념에 감동을 받아 단 3일 만에 만든 시나리오였다.
노효정 작가는 “매일 신문을 읽는 것은 좋은 시나리오 소재를 찾는 일이 될 수 있다”며 “또 최근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사람들은 무슨 영화를 보는지, 어떤 가수나 배우가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지 정도의 트렌드를 감지하고, 호흡하면 좋은 시나리오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잘 노는 사람이 이야기도 잘 만들더라”고 농담을 던지며 “관념적인 규칙을 깨고, 내안의 갇혀 있던 감정을 끄집어 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작가는 서울 천호동의 러시아 무희들을 소재로 다룬 작품을 기획, 제작 중에 있다.
한편, 전남대 박물관 2010 문화강좌 여덟 번째 강연에 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동명으로 제작된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작가 장정일이 찾아온다. 최근 그는 10년 만에 신작 <구월의 이틀(랜덤하우스코리아)>을 펴내기도 했다. 작가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오는 12일 용봉문화관 시청각실(4층)에서 강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