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길을 떠나다.
마음과 길을 떠나다.
  • 범현이
  • 승인 2010.04.09 18: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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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표정으로 소통하는 작가 김유홍(51)

▲ 김유홍 작가.
프롤로그

일부러 멀리 돌아 작가를 만나러 간다. 이제 갓 푸른색을 피워 올리는 영산강의 물줄기를 따라, 수양버들과 억새들의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돌아가기를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일부러 순간순간 공을 들여 태엽을 감아주지 않아도 자연은 순리대로 움직인다. 아직은 차가울 수액을 깊이 빨아올려 새순을 돋게 하고, 빨아올린 수액에 스스로의 마음을 담아 순백의 꽃을 피워낸다. 얼핏 지나는 데도 향기가 느껴진다. 어린 날, 한숨 푹 자고 어스름해질 무렵 일어나 윤기 나는 마루에 앉아 밖을 보면 갑자기 쏟아지던 소나기. 그리고 코 안으로 한없이 들어오던 먼지와 비 냄새. 막 움을 튼 흙의 들려진 냄새.

어디에 풀과 나무와 물의 마음이 있는 것일까. 향기까지 가리지 않고 지나는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마음.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한 사람은 제 마음까지도 너무 각각의 방에 넣어두어 찾아내기가 어려워진다.

작가는 사람의 마음을 그린다. 조형화된 작업으로 각각의 얼굴과 표정을 그리고 그 내면에 마음까지 그려 넣는다. 차를 멈추고 전화를 하자 모자를 쓰고 뒤쪽에서 손을 흔든다. 웃고 있는 등 뒤로 밝은 햇살이 그득하다. 눈이 부시다.

흔들려도 마음과 어깨동무

유년에는 섬에서, 고등학교는 목포, 대학은 서울에서 졸업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25년이 넘은 시간동안 사람의 표정을 그린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이곳에서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기회만 되면 이곳을 떠날 생각만 했는데 한 번 잡힌 발목을 뺄 수가 없다. 이제는 이곳이 고향이라 생각 되어질 정도로 편안하다. 좋은 사람들, 열심히 하는 작업들. 이외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작업실 안에는 크고 작은 작품들이 벽을 기대고 서 있다. 겹겹이 세워진 작품들은 하나같이 얼굴이고 표정이다. 세상의 온갖 희노애락을 조형화한 표정들이 검은 색으로. 회색으로, 다시 총 천연 색으로 웃고, 울고 있다.

▲ 작품명 <표정1>

작가는 “살아오면서 가장 큰 화두는 늘 <마음>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마음이 내 절대 절명이 된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헤쳐 나가기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꾸리고 있는 소중한 가정과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늘 힘에 부쳐 마음의 안식을 찾게 되었고, 평정심과 방하착(放下著))을 공부하다보니 아마도 내 안의 마음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갔다”고 마음을 찾는 여정의 시작을 설명한다.

무엇을 내려놓는다는 것. 자신을 조금씩 안으로부터 비워 가면서 평정심을 찾아가는 길은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지만 작가는 마음 안에서 새로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발을 들여놓는다. 망설임 없는 발걸음을 떼고 스스로 편안해 한다.

▲ 작품명 <심상>
얼굴 표정 - 마음을 그려 가는 일

사람의 마음은 얼굴의 표정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신체적인 여건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편안한 사람의 얼굴은 맑고 투명하며 고집스러운 사람의 얼굴에는 어딘지 독선적인 아집과 눈초리의 복잡함이 얽혀있는 것이 보인다. 처음 손을 내밀어 맞잡을 때도 웃는 표정의 손은 행복한 느낌으로 전달되어 오며 어디엔가 얽매여 있는 쫓기는 듯한 느낌의 얼굴은 손을 잡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불편해진다.

작가의 작업 안에는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이 극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 많아 일일이 그림을 들여다보며 섬세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대학 3년 때 시작한 얼굴 표정 시리즈가 지금까지의 작업의 연장선이다. 물론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작업이어서, 아니 아직도 마음을 표현 하는 일이 서툴러서 아직까지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처음의 작업들이 무채색의 마음들이 주조였다면 2009년부터는 아름다운 색이 가미되어 더 빛나는 싱싱한 마음들이 모여들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얼굴의 표정들을 일부러 잘 그리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을 벗 삼아 드로잉을 하듯이 그려갈 뿐이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일부러>라든가, <계산>을 해가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어떤 사건에 부딪힐 때마다 그것을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필연이다. 내 안의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일들이다. 마음도 같은 맥락이다. 무의식의 의식 안에서 이미 조형화 되어 있는 형상이 단지 내 손을 빌려 표현될 뿐이다”

▲ 작품명 <나,너,우리>

마음의 감동, 감동을 주는 그림 작업

▲ 작품명 <표정>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업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다. “유명해지고 작품 가격이 올라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작업은 작업이 아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작가 스스로 흥분되고, 곧 완성이 되어갈 자신의 작업에 노력하며 생각의 고통의 깊이가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감동이 없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고 작가는 단호하게 말한다.

밑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다. 얼핏 보면 목판화를 연상하게 할 정도의 덧칠을 반복한 밑그림은 작가의 열정을 돋보이게 한다. 손과 마음이 가는대로 드로잉 하듯 마음을 그리면서도 그 마음을 좀 더 잘 표현하기 위한 밑그림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작품 안 표정들은 서로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다. 이제 막 손가락과 발가락이 만들어져가는 태아 같기도 하다. 어쩌면 한 사람의 얼굴 표정은 세상의 우주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자궁 안의 태아가 우주와 한 몸이듯이.

마주보며 서로의 농밀한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도 뗄 수 없는 관계들로 한 줄의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웃는 표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울고 있는 표정으로 이어지고, 다시 숙연한 표정과도 마주한다. 한 줄로 시작한 인연이 다시 줄로 이어져 뗄 수 없는 마음으로 서로를 껴안는다.

▲ 작품명 <표정2>

수십, 수 백 개의 마음들이 모여 얼굴이 되고 표정으로 되살아난다. 작가가 살고 싶은 세상이 만들어진다. 수십, 수 백 개의  표정들이 서로 마주보며 한 몸으로 울고 웃으며 노래한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냄새도 형체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마음 하나씩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사람이다. 마음은 막 생성되어가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말을 한다. 마음을 놓은 수 있는 곳. 마음이 감동하는 그림. 마음을 모두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작가는 2011년 만 개의 얼굴 표정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문의 : 011-636-6221

에필로그

그때, 철판같이 견고한 어둠 한 장이 내렸다 / 엄마가 내게 나즉히 말했다. 얘야 / 누구든지 자기 안에 파란대문이 있단다. 네 안을 들여다보렴. / 나는 내 안에 얼굴을 파묻고 들여다 본다. / 가만히 바라보니, 파란대문 하나가 떡 버티고 있었다. 흔들어 보아도 / 꼼짝도 하지 않았다 / 하지만 엄마, 문이 잠겨 있어요. 열쇠가 없어요. / 걱정 말아라. 네 마음을 열쇠 구멍에 꽂고 힘껏 비틀어 보렴 // 그러나 나는 너무 녹슬었어요. 엄마. 온통 붉은 꽃 투성인 걸요. / 아니란다. 이 세상에 꽃을 피우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거란다. / 보거라. 저 공중에 네 숨결마저도 아름다 운 무늬 꽃을 피우고 있지 / 과연 바라보니, 내 숨결의 물빛 붓꽃이 투명한 공기알을 / 잔잔히 흔들고 있었다 // 나는 굳게 닫힌 파란대문의 열쇠구멍에 나의 / 마음을 꽂고는 힘껏 비틀었다. 그러자 저편, 시간의 태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내 마음의 / 경계선이 모두 지워버렸고 내 생각의 안팎이 무너져 버렸다 / 출출한 두려움의 경계가 훨훨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 파란대문은 내 안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 詩파란대문. 作신지혜

햇볕 내리쬐는 낡은 문짝에 쇠못들이 박혀 녹슬고 있다. 잊혀 진 누군가의 이름들. 나는 꿈  속에서도 필사적인 질주를 하며 땀을 흘리고 울었다. 절벽에 부딪혀 산산이 튀어 오르는 파도 조각처럼 부서지고 싶었다. 그때.

몸 안팎에서 일시에, 생명의 한 방향으로 집중해 떠다미는 알지 못할 힘의 총량. 갑자기 길이 느껴졌다. 발아래 웬 사람의 어깨가 놓여 있음을. 걸어온 길 들여다보면 그 길이 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어깨와 등과 머리였음을. 마음까지도 함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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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2010-04-11 10:36:29
좋운 그림 잘 보고 갑니다. 점점 중독 디어가는 그림 같군요..